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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원어성경 강해설교로 생명의 말씀 전하는 구례순복음교회 노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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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23 14:35

본문

‘살려주는 것은 영(토 프뉴마)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타 레마타)이 영(프뉴마)이요, 생명(조에)이라’(요6:33)

노남규 목사.jpg
구례군에는 구례순복음교회가 유일할 정도로 순복음교회가 약하다. 그동안 수많은 목회자들이 거쳐 갔다. 장기사역을 하기보다 잠시 머물다 떠났다. 그만큼 목회 환경이 열악했다.


1999년 10월 17일 노남규 목사가 부임하면서 교회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처음으로 지금까지 교회를 지키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특히 노남규 목사는 목회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하고 있다. 인위적인 성장을 위해 무모한 프로그램을 좇기보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 신실하다. 주일예배를 중심으로 주일 오후예배, 수요예배 등 모든 공예배는 말씀을 중심으로 강해한다.


그것도 원어성경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강해설교를 하고 있다. 다소 딱딱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노 목사는 말씀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 고집스럽게 원어성경을 강해하고 있다.


“성경은 학문도 이론도 아닙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되어 질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 말씀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노 목사가 지독할 정도로 원어성경을 강해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과 이끄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원래 노 목사의 가정은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믿음의 가문이다. 주일학교는 어머니를 따라 다녔지만 그 후 교회를 떠났다. 어머니의 간곡한 권면이 있었지만 세상이 좋았다. 욕망을 따라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다 36세 때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병원을 찾아 진단한 결과 심각한 신장염이었다.

 

10일 만에 얼굴이 붓고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신장염 권위자인 의사가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을 때 조직감사를 하면 더 위험하다는 소리를 듣고 거절하고는 병원을 나왔다. 막상 거리로 나오니 막막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한약을 먹었지만 몸은 하루가 다르게 위험신호를 보냈다. 아들의 고통을 차마 보시지 못한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자고 했다.


시골로 내려온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교회를 가자고 깨웠다. 억지로 끌려갔다. 기도도 할 줄 몰라 눈만 뜨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쳐다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다음 날 새벽, 다시 교회 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온 심장이 터질 듯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후 여동생에게 금식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산에서 3일 동안 기도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조금씩 마음이 녹아지면서 믿음의 눈이 떠졌다.


다시 서울로 올라 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녔다. 죽어도 교회에서 죽고 싶었다. 이왕 교회 다닐 것이면, 제대로 성경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평신도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예언서를 배우는데 깜짝 놀랐다. 700년 전 예언자를 통해 예언한 것이 신약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머리에 전율이 오르는 충격이었다. 예언이 이루어졌다면 그 말씀은 진리다.


그 길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는 모든 성경공부는 다 했다. 열정적으로 말씀을 배우고 전도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주변에서 보고는 신학교에 가라고 권면했다. 처음에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신학교?’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계속해서 여러 환경을 통해 집요하게 이루어졌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그 길로 인도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더 이상 거절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환경이 되었다. 신학교에 첫 발을 내딛은 날부터 신기한 것은 지금까지 신장염이 재발하지 않았다. 한 번도 이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지만 병은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신학교 시절에는 삼각산에서 기도에 전념했다. 100일 작정기도 등 거의 매일 저녁마다 산에 올라 기도했다. 삼각산에서의 기도훈련은 영성의 눈을 뜨게 했다.


1990년 8월 신학교 4학년 2학기 때, 광양 제철소 앞에 교회를 개척했다.
아는 권사의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처음에는 권사 가정과 중학생 2명을 전도해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초라한 천막교회지만 3개월 정도 지나자 한 두 가정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날도 주일이었다. 평소와 같이 설교를 하는데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다.
‘네가 전하는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 말이 속에서 울리는데 순간 말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설교는 그것으로 끝났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올바른 설교를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성경을 연구하는 세미나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다. 신학대학원에 입문해 다시 공부를 해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했다.


한 번은 서울에 있는 세미나를 찾아 갔는데 ‘원어성경’을 가르쳐 준다는 전단지를 나눠 주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아! 여기다.’싶어 그곳을 찾았다. 원어를 몰라도 3년만 버티자.


광양에서 서울로 원어성서원을 다니며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다녔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순복음교회 목사가 매주 온다는 사실에 의아해 했다.


“원어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벙어리 경험을 통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설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사실 광양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원어성경 공부를 위해 교회사역을 잠시 내려놓으려 했다. 그 말을 들은 성도들은 극구 반대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원어성경공부를 계속했다.


그 후 광양에서 여수, 그리고 1999년 구례순복음교회에 청빙을 받았다. 당시 교회는 여러 풍파를 겪으면서 모교회를 지키고 사랑하는 성도들만 남아 있었다.


“저는 하나님 말씀만을 가르치고 설교합니다.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씀에 충실할 것입니다.”


이 말을 하자 기다렸다는듯이 성도들은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가르쳐 주세요.”


서로의 필요가 맞았다.
구례순복음교회에서 사역은 철저한 원어 강해설교 중심이다.
주일 설교 내용은 그대로 교회 주보에 싣는다. 강단에서 들은 설교를 집에 가서 다시 읽으면서 더 깊이 묵상하라는 것이다. 구역장들은 구역원들에게 강해 말씀을 가르치고 나눈다.  


주일 오후예배는 기도, 예배, 교회 등 주제별로 강해한다. 교재를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수요일에도 강해설교를 한다. 원어 강해설교를 하기에 귀를 즐겁게 하는 예화는 사용하지 않는다. 본문을 설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한 번 시작하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그래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살려주는 것은 영(토 프뉴마)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타 레마타)이 영(프뉴마)이요, 생명(조에)이라’(요6:33). 이 말씀처럼 성경은 이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 어떻게 천국을 살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내가 말하지 말고, 성경이 성경을 말씀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도들의 믿음은 견고해졌다. 기복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교회와 지역사회, 선교를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있다.

구례순복음교회.jpg

최근 구례순복음교회는 화사한 봄 옷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수천만 원이 드는 공사지만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헌신하여 아름답게 꾸몄다.


또한 북방선교회를 통해서 어려운 선교지를 위해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소외된 국내 이웃들을 위한 다양한 사역도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구례군기독교연합회를 통해서 부활절 행사와 장학사업, 지역별 체육대회, 등반대회 등 지역사회를 위한 연합사업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사실 목사는 하나님과 성도들을 이어주는 ‘중매쟁이’일 뿐이다.
충실하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행하도록 안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생명의 양식인 말씀이 성도들을 변화시키고, 믿음으로 살게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를 만나고, 목사로 부름 받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노 목사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성령에 이끌려 왔다.     


노 목사의 앞으로 비전도 분명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맡은 바 말씀 사역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그날까지 오직 이 길만을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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