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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내적 충만 상태로 발전하라 > 김성도 목사의 오순절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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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내적 충만 상태로 발전하라 > 김성도 목사의 오순절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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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내적 충만 상태로 발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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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굼 작성일17-12-06 14:10

본문

현대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면서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졌었다. 웨슬리 계통의 오순절주의에서는 성령세례와 완전성화를 같은 경험으로 보던 것에서, 방언으로 증거 되는 성령세례는 완전성화와 별개의 경험이라고 주장하였고, 성령세례의 목적을 성화에 무게를 두었었다.

 

반면에 우리 개혁 계통의 오순절주의에서는 성령세례와 중생을 같은 경험으로 보던 것에서, 성령세례는 중생 이후에 받는 별개의 경험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목적을 봉사와 증거의 능력부여에 있다고 보았었다. 그리고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을 동일한 경험으로 보아 성령세례는 최초의 성령 충만이고, 그 이후에 재충만, 재충만…을 계속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왔었다. 그리고 방언이 따르는 성령세례를 받으면 능력적 사역도 하지만, 삶도 변화할 것으로 기대해 왔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을 유창하게 하고, 예언과 능력 있는 은사 사역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삶에서는 거룩함의 변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성령 재충만’의 시간을 가져 영적 능력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쳐 왔었다. 그러나 솔직히 성령의 충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가 오래 가지 못하였고, 또한 삶의 변화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 때문에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거기에 미국에서 성공과 부요의 상징이었던 텔레비전 오순절 설교자 짐 베이커(Jim Bakker)와 지미 스와가트(Jimmy Swaggart)의 도덕적 몰락은 오순절 운동에 큰 타격을 입힌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들도 지금 안고 있는 고민이며 회의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왜 성령세례, 성령충만을 받았는데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일까?그것은 ‘충만’이란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과 함께 성령의 역사를 바르게 적용하지 못한 것에서 온 것도 있다고 보여 진다. “충만하다”는 헬라어에는 플레로오(πληροω)와 핌프레미(πιμπλημι) 두 개의 단어가 있다. 두 단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는, 핌프레미(πιμπλημι)는 오순절 날 임한 성령세례와 같이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 부여의 외적인 충만을 가리키고(행2:4), 프레로오(πληροω)는 심령으로부터 차고 넘쳐서 인격 속에 젖어드는 내적인 충만을 가리킨다(엡5:18).

 

둘째는, 핌프레미는 모두 단순과거 수동태로서 일회적인 역사(an action)를 가리키지만, 그렇다고 그 경험이 ‘딱 한번 만’(once-for-all)의 경험이 아니라 일회적이지만 반복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플레로오는 미완료 및 현재 수동태로서 문법적으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것을 가리켜 항상 충만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셋째는, 핌프레미 충만이 있은 후에는 능력이 임하여서 예언(눅1:41, 67)과 방언(행2:4), 기적(행9:17)이 나타나고, 설교(행4:8)와 복음 증거(행4:31, 13:9)에 능력이 나타났었지만, 그러나 플레로오 충만은 사역적인 면보다는 성령께서 그 사람의 모든 삶과 행위를 다스리시고, 영향을 미쳐서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를 이루어 가도록 만드시는 것이다(롬13:8, 갈5:14, 롬8:4, 9-10).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행6:3).

 

넷째는, 핌프레미 충만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모든 육체에게”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어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능력 입히움”의 은사적 역사이지만, 그러나 플레로오 충만은 이미 성령 받은 사람 속에 내재하여 삶을 새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내적 충만의 역사인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들이 지금까지 이해해 왔던 오순절의 성령세례, 성령의 외적 충만은 사역을  위해 주시는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하려고 한다면 핌플레미 충만을 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성령세례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재하시며 계속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플레로오 충만 상태에 들어가야만 하고 계속적으로 유지하여야만 할 것이다. 즉 로마서8장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영적 원리를 적용해야만 삶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성령의 열매도 주렁주렁 맺히게 될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개념을 다시 수정하고 보완하여 바르게 적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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