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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사명 > 김성도 목사의 오순절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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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사명 > 김성도 목사의 오순절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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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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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굼 작성일17-09-15 15:29

본문

윤경훈 교수께서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이라는 책을 통하여 기업들이 위험한 실패를 반복하는 유형의 예들을 들었다. 첫째는, 경영철학의 부재, 둘째는, 잘못된 의사결정, 셋째는, 윤리의식 부재, 넷째는, 미래 예측력 결여, 다섯째는, 전략적 사고의 부재, 여섯째는, 기업 이미지 실추, 일곱째는, 직원 동기부여 실패...등을 들었습니다.

 이 진단은 기업 경영에 관한 내용이지만, 어쩌면 교회도 조직체이고 경영해야 한다는 면에서 마치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의 교회는 영적인 면에서 실패를 하고 있으며, 교회 목적에서 이탈(離脫)하여 방황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입니다. 실패를 통하여 위대한 진리와 교훈을 배울 수 있다고 했으니, 더 이상 실패의 전철을 반복하지 말고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하나님의 우주 창조와 경영

 자연신론(自然神論) 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자연법칙에 맡겨두고 떠나 피조세계를 간섭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방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도 자연만물과 인간사를 붙들고 보존하시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경영하고 계십니다(11:35, 1:3).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攝理)라고 부릅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간섭하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어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의 손길로 우주와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10:29-30).

 또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류 구속을 위한 뚜렷한 계획을 세우시고 그 목적에 따라 성취해 가시는 역사를 경륜(經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섭리의 세 가지 개념을 이해해야만 하나님의 역사적 경륜을 바르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성경에는 비밀(μυστηριον)이라는 단어가 28번 나오는데, 27번이 하나님의 구속에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것으로서 계시(啓示)해 주지 않으면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영원 전부터 감추어진 비밀이 있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를 육체를 가진 인간이 알 수 없는데, 거기에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것”(1:26)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3:9)이 있었습니다(고전2:7).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점으로 인생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던”(3:5)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에게 성령으로 나타나게”(3:5)하셨습니다. 즉 계시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감추어졌던 비밀들이 속속들이 들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1:12, 1:26).

하나님의 비밀은 마침내 성취, 완성 될 것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10:7)

 비밀을 깨닫고 알게 된 종들이 열심히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면 마침내 완성되는 날, 그 비밀의 내용처럼 성취하고 마무리 짓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반드시 깨달아 알아야만 하고(11:25), 그리고 아직도 감추어진 비밀의 상태에 있는 불신의 세계를 향하여 밝히 드러내는 사명을 감당해 내야만 합니다(3:9).

 

 

 구약시대 신약시대

 감추어진 상태 불신자에게 감추어진 상태

 봉인 된 상태 신자 깨달아 알고(11:25)

 (1:26) (1:9) 밝히 드러내는 사명(3:9)  (10:7)

 

 

그 비밀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속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이 비밀은 만세 전에 미리 전하신 것이고(고전2:7),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1:27, 2:2), 하나님의 나라(4:11, 8:10)와 복음과 그 전파에 대한 것이며(16:25-26, 6:19),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은총들을 가리키고(1:27), 또한 구속 경륜을 성취하기 위한(11:26)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에 관한 것(1:20)...등입니다.

 

 

(2) 하나님의 계획과 영원한 목적에 대해 이해해야만 합니다.

 계시를 통해 깨달은 결과(3:3) 그 비밀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세우신 구속 계획구속 목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인류 구속에 대한 계획(βουλη)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정하신 계획”(2:23)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시고(1:7), 부르시고(8:30), 의롭다 하시고(3:24),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고(8:29),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이 설 자격을 주시고(1:4), 자녀의 명분을 주시고(1:5), 하나님의 기업이 되고 기업에 참여하게 하시고(1:11), 성령으로 인침 받게 하시고(1:13), 선한 일을 행하는 명품(2:10)이 되도록 만드시는 역사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계획을 세상에서 성취하기 위한 목적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προθεσις)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시는 영원한 목적”(3:11)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시는 것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목적에 따라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딤후1:9).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이제는 나타나고, 성취하고, 적용되는 것입니다(딤후1:10).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고”(3:8),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인지 드러내고”(3:9),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3:10)하는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3) 교회 공동체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구속 계획과 영원한 목적을 그냥 방치하시는 무책임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역사 가운데 경륜하셨고 지금도 경륜하고 계십니다. 경륜(οκονομια)이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역사 가운데서 성취해 내시는 섭리, 또는 원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효과적인 경영”, “하나님의 계획의 이행”(履行, implementation)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속 섭리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1:9)그의 계획하심과 목적하심을 이루어가셨습니다.

 마침내 예언으로 약속되어진 메시아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완성하게 하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심을 통하여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어 각 사람들에게 적용하고 확증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워 그 목적을 이어가게 하시고, 일꾼들을 세우셔서 영원한 목적을 성취해 가도록 하셨습니다(1:25).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속 경륜하심을 우리에게 위탁(委託)해 주셨습니다(고전9:17).

 하나님께서는 그의 구속 목적을 성취하심에 있어 자신 혼자서만 독단적으로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것...등은 하나님께서 홀로 계획하시고 성취하신 것이지만 복음과 그 전파, 또한 그 성취와 완성에 대한 것은 그의 사역자들에게 위임해 주시고 함께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고전3:9). 그러므로 교회와 그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위탁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해내고, 완성해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성취를 제쳐두고 헛된 일에 빠져서 안 됩니다(딤전1:4).

 교회가 맡은 과제(mission)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성취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경영권, 경륜을 위임(委任)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주 목적을 상실하거나, 또는 목적에서 이탈하는 행동이나 현상이 일어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쓸데없는 세속적인 것,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것...등으로 인하여 목적에서 이탈하여 다툼, 분쟁, 분열...등에 빠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2. 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륜

 기독교 교회는 지난 2,000년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 즉 우리에게 위탁된 것을 얼마나 잘 성취해 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만 합니다. 분명히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님의 사도들과 그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그 경륜하심이 잘 이루어져 갔으며, 힘이 있게 전파되고 진행되어 갔었습니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 동안에 복음으로 전체 로마제국을 점령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회는 로마 정권에 의해 공인 받고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점점 그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이탈되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독교 세력의 세계적 확장은 이루어졌지만 복음의 본질적 목적,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버리고 마리아 숭배, 성인 숭배, 천사 숭배에 빠져버렸고, 성령 역사에 의한 예배는 도태되고 종교 의식과 의례, 성례전에 의한 종교 생활로 변질되었고,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인 믿음의 구원을 버리고 행위를 통한 의롭다 함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목적을 성취하는 삶보다 선행과 공덕 쌓기에 몰두하고, 평신도의 전투적 또는 사명적 삶보다 성직자 중심의 종교로, 평신도를 피동적 신앙인으로 전락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기독교를 이 땅에 세우신 목적도 아니었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변질된 종교로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기에,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본연의 모습과 역할을 찾게 하려고 놀라운 경륜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종교 개혁자들을 세워 기독교를 개혁시키려 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1,000년의 역사를 통하여 기독교 종교의 본질에서 너무나 멀리 이탈했을 뿐만 아니라 거짓된 이단적 교리와 가르침들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복음적 종교를 완전히 퇴색(退色)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 마틴 루터, 존 캘빈...등 종교 개혁자들의 가슴에 개혁의 불을 질러 기독교의 본연의 진리, 복음적인 진리를 회복시키려고 횃불을 높이 들게 하셨습니다. 잘못된 교리, 기독교의 탈을 쓴 거짓된 신학적 요소들을 벗겨내는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 선언과 성직자 중심의 종교 행사를 평신도들에게 돌리기 위해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복음적 진리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첫 번째 경륜 역사였던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경건주의 운동자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개혁하려 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신학과 교리를 개혁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개혁자들 사이에 신학적 차이점 때문에 극심한 신학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신학적으로 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라 할 정도로 철학으로 신학을 논증하려는 태도 때문에 신자들의 영적 삶은 메말라 갔던 것입니다. 거기에 30년 동안 벌어진 종교 전쟁으로 인하여 유럽 전역은 황폐화(荒廢化) 되었고, 신앙과 삶은 피폐(疲弊)해졌던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요한 아른트, 필립 스페너, 프랑케, 진젠돌프와 같은 사람들을 일으켜 경륜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은 교리 논쟁을 배제하고 경건한 삶, 영성이 풍성한 삶, 경건의 실천을 강조하며 사람들의 심령을 회복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성결운동자들을 통하여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 이후 17-18세기에는 계몽적 합리주의 이론으로 인한 이신론(理神論, Deism)이 기독교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신적 계시를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적 본능이 신인식(神認識)의 원천이라고 주장하여 범신론적 신관, 또는 무신론적 사상이 교회와 대학의 강당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인들은 교회만 출석할 뿐 명목상 교인들이 만연하였고, 교인들의 삶은 영혼의 공허, 신앙적 무기력, 확신 없는 신앙생활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요한 웨슬리라는 인물을 경륜의 도구로 사용하여 거대한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1 각성운동, 2 각성운동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회개운동, 부흥운동, 해외선교 운동까지 전개하면서 세계 복음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했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또 오순절운동에게 구속 경륜 역사를 맡기셨습니다.

 교회를 병들게 하고 죽이려는 마귀의 역사는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19-20세기를 넘어오면서 기독교 세계에는 또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하는 합리주의 철학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유주의 신학을 확장시켜나갔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시작으로 인간의 이성 안에서 종교를 논하다 보니,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성경의 영감설, 예수의 동정녀 출생,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 예수의 육체적 죽음, 육체적 재림 등을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때에도 하나님께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교회에 개입하시고, 촬스 파함, 윌리암 시무어, 윌리암 더함...등과 같은 오순절운동자들을 교회 갱신과 활성화의 도구로, 세계를 복음화시키려는 하나님의 경륜의 도구로 사용하시게 되었습니다.

 현대오순절운동은 성령세례의 육체적 증거는 방언이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한 치유의 주님이다’. ‘성령을 부어주심은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는 역사다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기독교 세계를 발깍 뒤집어놓고 말았습니다. 오순절운동은 냉냉하고 조용했던 신앙을 뜨거운 열정의 신앙으로, 회의감으로 가득했던 자유주의 신학에서 확신 있는 복음적 신학으로, 무기력했던 신앙을 선교를 위한 사명감이 불타는 신앙으로, 기도할 줄 모르던 신앙인들을 방언기도와 함께 금식기도, 철야기도, 산기도...등으로 초대교회 신자들을 방불케 하여 기독교 세계의 신앙 형태를 완전히 뒤바꾸어놓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가톨릭교회의 신앙 형태까지 개혁시키고 바꾸어놓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또한 인간의 이성적 논리로 기독교 신학을 논하던 자유주의 신학자들까지도 성령 체험을 통한 기독교의 신앙으로 돌아서게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대 오순절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세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을, 또한 불신앙의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셨고, 이 시대의 합당한 경륜 도구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초대교회 타락한 중세교회 종교 개혁 경건주의 운동 성결운동 오순절운동 

  (원형교회) (변질된교회) (1회복교회) (2회복교회) (3회복교회) (4회복교회)

 

 

3. 오순절운동에 나타난 문제점들

 현대오순절운동은 가장 미약한 집단에서, 또한 광신도들이라고 취급받던 저급(低級)한 신앙인들에게서 시작하였지만 1세기가 지나면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세력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제3세계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확장 되어가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지나간 오순절교회들 사이에서는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깊은 고민과 회의(懷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운동의 가장 핵심 진리와 사역들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현상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론 어쉬(Ron Auch)기로에 서 있는 오순절주의에서 오순절운동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지적하였고, 포로마(M. Poloma)기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에서 오순절운동의 제일 큰 단체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지적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한국 오순절운동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진단하면서 갱신(更新)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오순절운동은 성령 역사를 방언 체험에 국한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현대오순절운동은 성령세례의 육체적 증거는 방언이라는 신학적 표제를 가지고 출발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성령세례 받는 최종 목적이 방언인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방언의 유익을 강조하고, 방언 기도에 열중하며, 더 나아가서 영적 신비한 것들을 체험하는 것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에는 성령세례의 목적이 방언하고, 예언하고, 꿈꾸고, 치유 사역하고, 귀신을 축출하고, 입신하고, 쓰러뜨리고...등 각종 신비체험 하는 것에 국한시켜버리고 마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빈야드 그룹에서는 춤추고 괴상한 웃음소리, 괴이한 짐승소리를 내는 체험에 빠지게 되었고, 어떤 사역자들은 교인들을 쓰러뜨려 기절시키고 입신시키는 것이 큰 권능인 것처럼 사역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하늘의 신비한 능력과 접촉하는 임팩트(Impact) 능력을 받겠다고 야단을 떨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산다면서 괴상한 행동,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등을 하는 신비주의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왜 성령을 보내 주셨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온 것들이며, 또한 방언 체험 후에 그 다음 단계, 더 높은 영적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깨닫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 기() 현상들인 것입니다.

 

(2) 오순절운동은 사울 왕(King Saul) 현상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 찾아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지역을 찾아가다가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삼상19:23-24). 구약시대에서 여호와의 신이 임했다는 것, 또한 예언 사역을 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영적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엄청난 영적 은총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삶에 전혀 번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에 대한 시기 질투는 더 심해졌고, 다윗을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세월을 허송하였고, 정신적으로 히스테리증과 악령에 사로잡히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강신술(降神術) 같은 미신적 방법을 추구하였으며, 생애 마지막까지 이성을 잃어버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며(15:16), 심령을 새롭게 하는 변화의 영이십니다(4: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운동가들 사이에도 신비한 영적 체험은 있으나 삶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사울 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시기 질투가 난무하며, 서로 모함과 다툼, 악한 술수와 거짓된 행동들...등이 편만해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 때문에 성령 체험한 기독교 신자의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감마저 들게 하고 있습니다.

 

 

(3) 오순절운동 가운데 시몬(Simon)화 현상(mammonism)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에 마술사 출신 시몬이라는 사람은 사도들을 통하여 성령이 역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돈을 가지고 성령 사역을 사려고 했습니다(8:18-19). 이러한 현상이 오늘 오순절운동이 전개되는 현장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사역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사역이 전개 되는 현장에 돈 거래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분이겠지만, 부흥사들 사이에서 거대한 성령 집회를 빌미로 엄청난 액수의 돈 거래가 자행되고, 심지어 몇 백만 원, 몇 천 만원의 특별 헌금, 특별 별미를 드려야 기도해 주고, 심방해 준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오순절운동을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 비정상적인 돈 거래, 흑막의 돈 놀음이 있다면 그것은 타락한 시몬화 현상인 것입니다.

 

(4) 오순절운동에 고린도교회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고린도교회는 가장 영적으로 신령한 교회였고, 성령의 역사가 가장 많이 일어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타락한 교회, 각종 문제로 항상 시끄러운 교회, 세속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교회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교회 문제로 사분오열 되었고, 교인들은 편 갈라 싸우느라 상처와 영적 곤고함에 빠져 방황하였습니다. 또한 얼마나 교만과 자만심에 빠졌던지, 사도 바울로부터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고전4:8)는 책망을 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음행하는 자들이 속출하였고, 믿는 형제들끼리 세상 법정에 고소 고발이 빈번했던 것입니다.

 현대오순절운동에도 고린도교회 현상으로 사분오열 되었고, 교역자들은 상처받은 심령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좌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5) 무엇보다 오순절운동은 지금 세속적 성공주의에 심취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순절운동이 전개 되는 곳에 수많은 심령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자동적으로 오순절교회는 성장하는 교회라는 이미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모습을 관찰하던 맥가브란, 피터 와그너 박사 같은 분들이 교회 성장학을 발표하여 성령의 역사와 교회 성장이라는 화두를 던지므로 교역자들로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오순절교회와 성령운동을 수용하는 교회들은 엄청난 양적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고, 거대한 교회, 거대한 교회당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거대한 교회 성장을 꿈꾸다 보니, 많은 교인과 거대한 교회당을 확보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속적 교인 쟁탈전이 벌어졌으며, 개 교회주의가 강화 되고, 작은 교회와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희생시키는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교역자들마다 성장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목회 사역의 목표가 되었고, 큰 교회만이 참 교회요, 참된 목회 성공이라는 기이한 세속적 패러다임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큰 교회를 이루고, 어느 정도 목회 성공했다는 인식을 갖게 된 목회자들 사이에 종교적 성공주의 승리주의 사상에 빠지고, 풍요함 속에 세속화가 가속화 되며, 목회적 안일함에 젖어들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성취라는 과제는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의 세속화 현상과 부패상의 문제점들이 폭발하고, 또한 메스컴을 통해 세상 앞에 낱낱이 공개되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둘째 치고, 교회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 선교 문이 닫혀 지는 불행한 일들이 벌어져서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 성장운동에 앞장섰던 오순절교회가 바르게 이끌어주지 못한 결과가 아닌지, 그 책임감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6) 모든 문제의 원인은 오순절교회 목회자가 오순절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무지 또는 이해 부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우리 목회자들은 오순절 신학의 특징이 무엇인지 몰라 여기저기에 있는 신학 이론들을 가져다가 짬뽕신학을 만들었고, 중구난방의 신앙을 가르치는 실수를 범했다고 보여집니다. 오순절 신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몰랐었기에 교인들을 방치하였고, 교인들로 영적 무지와 무식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성령 받은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삶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내야 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성경적인 바른 삶인지...등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령 받고 방언만 하게 하는 무지한 교인들을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것은 오순절교회가 성령 받은 목적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입니다.

 

 

4. 오순절운동이 거듭나 실천해야 할 역사적 과제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계속해서 붙들려 사용되어지는 경륜의 도구가 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거듭나고 갱신의 갱신을 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경륜 역사를 맡은 오순절 교회로서, 성령 받은 오순절 교역자로서, 오순절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게 된 신자들로서 이제 눈을 떠 오순절운동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목적을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1) 우리는 확실한 인간 변화를 위한 사역을 전개해야 합니다.

성령 사역의 첫 번째 것은 인간의 본질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영을 마음에 두어 새 마음을 주어...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36:26)이라고 했습니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3:5)으로 먼저 인간의 본질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인간의 본질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삶이 변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사역의 두 번째는 삶의 변화입니다. 지금 오순절교인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령의 능력은 나타나고 있지만 삶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먼저 성령론의 재정립(再定立)이 필요합니다. ‘성령 충만에는 외적 충만인 핌풀레미(πιμπλημι) 충만이 있고(2:4), 내적 충만인 플레로오(πληροω) 충만이 있습니다(5:18). 외적 충만은 방언의 증거가 있고 각종 은사들이 따릅니다. 삶의 변화를 경험하려면 내적 충만 상태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오순절교회는 바로 외적 충만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삶의 변화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준 삶의 변화를 위한 다섯 가지 영적 원리를 적용해야만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삶의 변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원리를 따르지 않고 엉뚱한 방법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독 신자의 삶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도 성취해 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교회 갱신 운동을 전개해야만 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목적 중에 하나는 종교적 삶의 변화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교의 형식적 종교, 삶의 변화가 없는 종교,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종교를 새롭게 갱신시키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마가다락방에 오순절 성령이 임한 후에 유대인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 받은 기독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의식적 종교를 버리고 생명력이 넘치는 종교로, 세상을 향하여 무능했던 종교에서 세상을 개혁시키는 종교로 탈바꿈시켰던 것입니다.

 현대오순절운동도 기독교 세계를 새롭게 갱신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자유주의적 회의(懷疑) 신학을 성령 체험을 통하여 살아있는 진리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종교적 의식과 의례주의에 빠졌던 가톨릭 계통의 기독교에 성령의 열정을 경험하게 하고, 율법적 종교 생활에 있던 교인들은 복음적 교인으로 바꾸어놓았으며, 무기력한 교회와 종교 생활을 하던 것에서 성령의 불을 받고 용광로처럼 꿇어 오르는 신앙인으로 새롭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순절교회는 기독교 세계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성경적인 참된 신앙, 참된 사역, 참된 교회를 성령 안에서이루는 일에 선구자 역할을 해 내야만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새로워져야 한국 교회를 바르게 이끌 수 있고, 개혁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사회적 변화에 앞장서야만 합니다.

 성령 받은 교회의 가장 큰 과오(過誤)는 성령 체험하고 우리끼리 신령운동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주시는 목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실 때에 광야가 아름다운 땅이 되어정의와 공의가 펼쳐지는 사회가 된다고 했습니다(32:15-17). 성령은 개인적 체험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로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성령으로 권능을 받은 에스겔 선지자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려내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성령 받은 오순절교회는 이 시대를 구원해 낼 희망입니다. 희망을 잃은 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소생시키는 역사를 일으켜야만 합니다. 캄캄함과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쳐주고, 정의와 공의가 없어 절망에 울부짖는 자들에게 치료와 회복을 주어야만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과 책임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종교 놀음이나 하고, 자신들의 복 받기 위해서, 자신들의 구원이나 영달(榮達)을 얻는 것에 목적을 둔 기복적 종교는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는 종교요, 시대적으로 필요 없는 종교 집단일 뿐입니다.

 오직 성령 받은 오순절교회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으며, 마른 뼈다귀 같은 인생들을 소생시킬 수 있고, 투쟁적 시위로 거리를 방황하는 집단 문화를 바꾸어놓을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통치 이념을 이 사회에 실현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전 교인들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군 만드는 사역을 실시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속해 주신 목적을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2:10),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2:14)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에는 구경꾼인 군중(multitude)이 너무나 많습니다. 목회자들도 군중 사역 중심으로 목회하는 실정입니다. 많은 숫자가 구름떼 같이 몰려드는 것 정말 감동입니다. 그러나 군중으로는 이 땅에 어떤 영향력도, 어떠한 과제도 실현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군중 가운데서 제자를 부르시고, 제자들 가운데서 사도를 뽑아 훈련시키고, 훈련시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主役)으로 파송하였던 것입니다(6:13, 17). 그리스도의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역은 교회 테두리, 교회 사역에 국한 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전파, 세상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사명(Mission)을 붙들고 보냄 받는 사도적 신자’(Apostolic Believer)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역의 목표를 군중 목회에서 사도 훈련 목회로 수정하고 업그래이드(Upgrade) 시켜야만 하겠습니다. 이 시대를 책임지는 성령 받은 사도적 일꾼 세우는 목회로 전환하여 오순절교회의 사명을 완수해 내야만 하겠습니다.

 

 

 성령 받은 오순절교회만이 이 시대의 희망입니다. 거듭납시다. 뼈를 깎는 회개와 갱신(更新) 운동을 전개하여 독수리처럼 다시 일어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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