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בָּרָא),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
<국제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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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찬송가 「참 아름다워라」의 가사처럼 화창한 계절을 맞아 자연은 아름다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을 견뎌낸 앙상한 나무의 가지 끝에는 꽃이 피고,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나온 연약한 초록의 새순들은 어느덧 짙은 푸름을 더해간다. 이 놀라운 모습은 단순히 계절이 바뀌는 자연 현상을 넘어, 모든 것이 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임을 깨닫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연을 그저 물질이나 자원으로만 여기기 쉽다. 그 안에 담긴 창조주의 손길을 놓치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בָּרָא)하시니라”라고 선언하며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여기서 ‘창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바라(בָּרָא)’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든든한 기초이다. 이번 호에서는 히브리어 ‘바라’의 의미를 살펴보며,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과 그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구약성경에서 약 49회 등장하는 히브리어 ‘바라(בָּרָא)’는 아주 특별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고대 근동의 다른 언어들과 비교했을 때 이스라엘만의 독창적인 성격을 가지는데, ‘바라’의 가장 큰 특징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 동사의 주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재료를 가지고 물건을 만드는 ‘아사(עָשָׂה)’나 모양을 빚는 ‘야차르(יָצַר)’와 달리, ‘바라’는 아무런 재료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뜻한다.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창조’가 수공예나 출산의 은유로 표현된 것과 대조적으로, 성경의 ‘바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창조를 강조한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인간의 기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실 때 쓰인 ‘바라’는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전적인 새로움을 상징하며, 태초의 창조 사건을 넘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생명을 부르시는 창조이다. 시편 148편 5절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라고 고백한다. ‘바라’는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명령만으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함을 의미한다. 죽은 것 같았던 겨울 땅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불러내신다.
둘째, 우리를 살리고 새롭게 하시는 구원의 창조이다. 이사야서는 ‘바라’를 역사적 사건과 연결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창조(바라)’하셨고(사 43:1), 메마른 광야를 숲으로 ‘창조’하겠다고 약속하셨다(사 41:17-20). 이는 창조가 태초의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백성을 새롭게 하시는 구원의 은혜임을 뜻한다.
셋째,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내면의 창조이다. 다윗은 시편 51편 10절에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바라)하소서”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이는 스스로 죄를 씻을 수 없기에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한 손길을 구하는 장면이다. 또한 시편 104편 30절은 하나님이 지면을 새롭게 하신다고 노래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한 번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매년 대지가 소생하듯 지금 우리 안에서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매년 바뀌는 계절을 당연한 자연 현상으로 여길 때가 많다. 하지만 ‘바라’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계절의 변화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풀 하나도 하나님의 보살핌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던 그 음성을 기억할 때, 우리 역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세상 가운데 무너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아가 주변의 모든 피조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
추운 겨울 언 땅 밑에서 조용히 생명을 준비하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겪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길로 새로운 일을 창조하고 계신다. 건강을 잃거나 소중한 관계가 깨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일지라도, 하나님은 ‘바라’의 권능으로 우리 인생의 메마른 가지에 다시 꽃을 피워 주실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자연은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새로운 시작’의 약속이며, 어떤 어둠도 생명의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의 질서 안에서 누리는 참된 안식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바라’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크고 선하신 뜻 안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내 힘으로만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려 하면 우리는 쉽게 지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지만, 창조주가 만드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그분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쉼을 얻을 수 있다.
히브리어 ‘바라’는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그분의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을 보여준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이제 우리는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이라는 찬송가 가사의 고백을 입술로만 부를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신비에 감사하며 대지를 뚫고 자라나는 초록빛 생명들을 볼 때마다 ‘바라’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빚으시고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는 주님의 손길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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