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국제신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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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14:3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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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격언이 있다. 무엇인가 목표한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이 격언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성령 안에서 말씀을 따라 하루하루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인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인내의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묵상하고자 한다.
인내는 헬라어로 ‘휘포모네’(ὑπομονή)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32회 사용되었으며, ‘인내, 끈기, 확고부동, 참을성’ 등의 의미가 있다. ‘휘포모네’는 ‘~아래 머물다’라는 뜻을 가진 ‘휘포메노’(ὑπομένω)에서 파생되었다. 즉,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인내라는 말의 의미는 ‘괴로움이나 어려움 아래에서 머무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고난을 감수하며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인내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ὑπομένω)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ὑπομένω) 이를 생각하라”(히 12:2-3). 예수님은 자신을 거역하던 죄인들을 참으셨다. 십자가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참으셨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고통을 견디셨던 주님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좋은 인내의 본보기이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가 이야기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곧 인내의 사람들이었다. 노아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1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인내하며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히 11:7).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막막함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며 수십 년이 넘는 믿음의 여정을 걸어갔다(히 11:8).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삶을 인내했다(히 11:25). 어떤 믿음의 사람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해서 심한 고문을 견뎌냈다(히 11:35). 믿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실상인 믿음의 증거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오늘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고난을 선택하고 인내하며 살았던 것이다(히 12:1). 이러한 예수님과 선진들의 인내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믿음의 태도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내가 필요한 이유를 가르치셨다. 먼저,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이 싹트고 열매 맺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ὑπομονή)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농부가 씨앗을 뿌린 후에 결실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 가운데 비바람과 태풍, 추위와 더위, 가뭄과 홍수 등과 같은 위기가 닥쳐온다. 좋은 농부는 이러한 고난을 피해 도망치지 않는다. 비바람과 태풍으로 쓰러진 작물을 세우고, 가뭄이 들면 어떻게든 물을 끌어와 메마른 논과 밭을 해갈하려 한다. 그 모든 고난을 인내하며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다. 믿음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마음에 심어진 말씀의 씨앗을 품고, 불어닥치는 모든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며 풍성히 열매 맺도록 힘써 나가야 한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자신의 사역을 되돌아보면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인내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ὑπομένω)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딤후 2:10). 모두가 존경하는 바울 역시 사명을 감당하는 데 큰 고난을 당했다. 감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를 맞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고,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대적자들에게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겼다(고후 11:23-27).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나,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 모두 인내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야고보서는 인내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가르쳐 준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ὑπομονή)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ὑπομονή)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믿음의 시련 가운데 인내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기뻐해야 한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그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내는 반드시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기에 고난을 인내하며 소망을 품고 기뻐할 수 있다.
“보라 인내하는(ὑπομένω)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ὑπομονή)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그리스도인 중에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다. 믿음으로 살다 보면 참으로 힘든 고난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의 눈으로 참고 인내하는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며, 마침내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쁨 가운데 인내할 수 있다. 이러한 인내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시련을 성령님과 함께 기쁨으로 견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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