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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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3 13:1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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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속성을 15가지로 설명했다(고전 13:4-7). 그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속성이 ‘오래 참음’이다. 바울이 말하려고 했던 ‘오래 참음’의 뜻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은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신약성경에서 ‘오래 참음’과 관련된 단어는 ‘마크로뒤메오’(μακροθυμέω)이다. 이 단어는 명사형 ‘마크로뒤미아’(μακροθυμία)와 함께 총 24회 언급되었으며, ‘오래 참다, 인내하다, 기다리다, 체념, 감수, 확고부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크로뒤메오’는 ‘멀리 떨어진, 먼, 긴’이라는 뜻을 가진 ‘마크로스’(μακρός)와 ‘분노, 진노, 격노’라는 뜻을 가진 ‘뒤모스’(θυμός)가 합성된 단어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분노까지의 거리가 먼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뒤모스’는 인간적인 분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마지막 날에 마음이 강퍅하고 완악한 사람들과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롬 2:8; 계 15:1, 7). 이로 볼 때 ‘마크로뒤메오’는 인간의 죄에 대한 진노를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표현한다.
‘뒤모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뒤모스’는 ‘살해하다, 죽이다, 제물을 바치다’라는 의미인 ‘뒤오’(θύω)에서 파생되었다. 뒤오는 신약성경에서 14번 사용되는데, 그중 눈에 띄는 용례는 유월절에 양을 잡을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θύω)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막 14:12a).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θύω)되셨느니라”(고전 5:7b). ‘뒤모스’의 어원에는 ‘희생하다’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크로뒤메오’는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면서도 희생제물이 되기까지 참으시는 예수님의 인내가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자신의 진노와 심판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시면서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오래 참으며 너그럽게 대해주신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μακροθυμία) 관용하시고”(롬 9:22).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 얻을 기회를 주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μακροθυμέω)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b). 살다 보면 사람들이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허용하시거나 관망하시는 분이 아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께만 속한 성품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오래 참음이라는 성품을 평생 이루어가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가 복음 전도자로 변화된 이유를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에서 찾았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μακροθυμία)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6). 예수님이 바울을 오래 참아주신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래 참음의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오래 참아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의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오래 참아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셨다. 어떤 임금이 일만 달란트라는 막대한 빚을 진 종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 종은 엎드려 절하면서 “내게 참으소서(μακροθυμέω) 다 갚으리이다(마 18:26)”라며 빌었다. 이 모습을 불쌍히 여긴 주인은 그의 빚을 완전히 탕감해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빚을 탕감받고 나가자마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붙잡아 그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그 동료는 탕감받은 종이 임금에게 했던 것처럼 엎드려 “나에게 참아 주소서(μακροθυμέω) 갚으리이다”(마 18:29)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 종은 자신의 동료를 감옥에 가둬버렸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임금은 막대한 은혜를 받아놓고도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은 종에게 진노하며 종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을 취소하고 그를 감옥에 가둬버렸다. 이 비유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큰 구원을 받은 우리도 다른 사람을 오래 참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오래 참음이라는 단어는 성령의 9가지 열매에서도 언급된다(갈 5:22). 오래 참음은 단순히 인간적인 측면에서만의 인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래 참음’에는 죽기까지 순종하사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인내가 포함되어 있기에 사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오래 참기를 힘쓰면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며 살기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려다 보면 많은 희생과 수고와 눈물이 뒤따른다. 그래서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부활 주일을 맞이하면서 다시 예수님의 오래 참음에 대해 묵상해보자.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을 마음에 담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오래 참고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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