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2)
국제신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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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2 13:3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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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근본적인 사명이다(사 43:7). 모든 사람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통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성경은 예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성경에서 예배를 나타내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히브리어 ‘아바드’(עָבַד), ‘샤하’(שָׁחָה)와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 ‘라트류오’(λατρεύω),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ία) 등이 있다. 필자는 지난 호에 이어 신약성경에서 예배와 관련되어 사용된 단어인 ‘프로스퀴네오’, ‘라트류오’, ‘레이투르기아’에 대해 살펴보겠다.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는 ‘~를 향하여, ~앞으로’를 뜻하는 전치사 ‘프로스’(προσ)와 ‘입 맞추다’를 의미하는 동사 ‘퀴네오’(κυνέω)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60회 사용되는데 기본적으로 손이나 발에 입을 맞추는 행위를 의미한다. 특히 프로스퀴네오는 예수님께 나와 치유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행동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프로스퀴네오)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마 8: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프로스퀴네오)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마 9:18).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프로스퀴네오)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 15:25).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프로스퀴네오)”(요 9:38). 나아가 프로스퀴네오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프로스퀴네오) 하니”(계 19:10). “명절에 예배하러(프로스퀴네오)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요 12:20).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프로스퀴네오) 예루살렘에 왔다가”(행 8:27). 이처럼 프로스퀴네오는 외부의 압력에 의한 강제적인 복종이나 굴복이 아니라, 자원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예배란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경외심이 수반된 엄숙한 행위로서, 마음과 행동이 일치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한편, ‘라트류오’(λατρεύω)는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라트류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롬 1:9).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라트류오)”(빌 3:3). 또한 이 단어의 명사형인 ‘라트레이아’(λατρεία)는 ‘예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라트레이아)와 약속들이 있고”(롬 9:4).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트레이아)”(롬 12:1). 이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통해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며,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드리는 제물과 같이 일상에서 삶 전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ία)는 ‘사역, 직무, 섬김’이라는 의미로 히브리어 ‘아바드’가 헬라어로 번역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회에서 특정 공동체의 집단 활동이나 시민의 공적 의무를 의미했는데, 신약성경에서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직무(레이투르기아)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눅 1:23).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레이투르기아)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히 9:21). 또한 영어의 ‘전례, 예전’을 뜻하는 ‘liturgy’가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레이투르기아’라는 단어에 ‘의식, 예식’의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의식이나 예식은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행위다. 즉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도 필요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공적 예배 또한 중요하며 이를 위해 예배에 질서와 형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예배 장소에 대해 질문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프로스퀴네오)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프로스퀴네오)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프로스퀴네오)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프로스퀴네오)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프로스퀴네오)”(요 4:23-24). 이를 통해 구약시대와 달리 예배가 반드시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예배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을 공적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레이투르기아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과 장소를 거룩하게 구분하여 함께 드리는 공적 예배를 통해 예배의 중요성과 예배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예배는 구분된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드려지는 삶의 예배를 포함한다. 모든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향하는 온전하고 순전한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는 사람에게 은혜와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 우리 모두 온전한 예배자가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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