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페이지 정보
23-08-25 09:58관련링크
본문
세계적인 명작으로 알려진 단테의 『신곡』은 중세 시대 서구의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문학 작품이다. 이 책에 보면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에 “여기 들어오는 자는 모든 소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적혀 있는 대목이 있다. 단테가 말하고자 했던 지옥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는 곳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소망이 영원히 없는 곳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땅에서의 삶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소망이 있다면 지옥까지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모두가 힘든 이 시대에 지옥 같은 삶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소망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소망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성경에서 말하는 소망은 무엇일까? 소망과 관련된 헬라어는 ‘엘피스’(ἐλπίς)다. 이 단어는 ‘예상하다, 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엘포’(ἐλπω)에서 유래되었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소망’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엘피스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를 잘 보여주는 성경 본문은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할 때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쫓아낼 때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ἐλπίς)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행 16:19). 귀신들린 여종에게 점을 치게 해서 돈을 벌고 있던 주인들은 여종에게서 귀신이 떠나가자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엘피스가 ‘미래에 대한 기대’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바울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도 엘피스의 일반적인 의미가 사용되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ἐλπίς)마저 없어졌더라”(행 27:20). 바람과 파도가 너무 심해서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하자 선원들에게 살 수 있다는 소망, 즉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던 소망은 이와 다르다.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담고 있긴 하지만 그 기대가 그리스도께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 품었던 소망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엘피스의 의미는 베드로전서에서 잘 나타나 있다. 베드로전서는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하던 때에 기록되었다. 당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붙잡혀 매를 맞기도 하고 원형경기장에 끌려가 맹수들에게 잡아먹히기도 했다. 베드로는 이렇게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산 소망이 있다고 격려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ἐλπίδα)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우리의 소망이 산 소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역시 부활하게 될 것을 확신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광의 삶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 소망은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ἐλπίδος)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3).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의 역사도 중요하고 사랑의 수고도 중요하지만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 것도 중요하다. 믿음으로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고난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바울이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을 소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땅은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고 마침내 하나님이 모든 원수를 멸망시키시고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고난의 상황에서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0)라고 고백하며 살아갔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부활을 소망하며 인내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고, 소망 자체가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해야 한다. 이 소망이 우리를 은혜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세상 사람의 소망은 헛된 기대일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내일의 생생한 현실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약속된 말씀들이 성취된다는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자. 그럴 때 그리스도의 부활 소망이 우리에게 힘든 현실을 살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