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관점에서 혼합주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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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8 14:4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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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으로 책임이 있는 혼합주의”(Biblically Responsible Syncretism)는 생소한 선교신학적인 용어이다. 이 용어가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스위스의 오순절 선교학자인 워터 홀렌버거(Walter J. Hollenweger)에 의하여 한세대학교 영산신학 포럼에서 발표된 소논문 이였다. 그리고 1997년 그의 대작인 “오순절주의: 기원과 발달”("Pentecostalism: Origins and Development")에 소개된 글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 가졌던 떨림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 오순절을 말할 때 당시에 조용기 목사 신학을 이단이나, 혼합주의로 보고 많은 논쟁이 있었고 우리는 그의 따른 피해자들이었다. 순수한 오순절 입장에서 볼 때에 이단과 혼합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선교신학자로서 이 용어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짧은 지면에서 우리 오순절 선교 신학의 성경적인 의미로 홀랜 버거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혼합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유대인으로 태어나신 것은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이미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가장 높은 신학적인 교육을 받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고 유대교의 한 분파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혼합주의였다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의 문화의 옷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오순절 입장에서 혼합주의를 살펴본다면, 예수님은 구약성서에서 예언한 대로 이 땅에 오셨고, 삶을 사셨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셔서 승천하여 약속의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완성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혼합주의가 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는 혼합주의나 한 유대교의 분파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사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세운 기독교는 가장 성경적으로 책임이 있는 혼합주의 위에 세워졌다는 논리가 형성된다.
두 번째는 복음이 로마교회로부터 우리게 전달되는 동안 복음은 문화의 옷을 입고 혼합주의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까지 전해져 왔다는 것이다. 이미 로마 가톨릭은 이단적인 혼합주의가 되었다. 서구의 많은 교단과 교회들이 혼합주의적인 이단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한국 오순절이 샤머니즘과 혼합되었다는 것은 누구나가 들어왔던 이야기다. 홀랜 버거는 “이미 문화와 혼합된 서구의 기독교가 비 서구지역에 있는 기독교를 혼합주의로 정죄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단지 여기서 그는 성서가 정통 기독교의 표준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서구는 문화가 주체가 되어 비 성경적인 기독교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책임이 없는 혼합주의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오순절, 특별히 조용기 목사의 신학을 비 성서적인 혼합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무책임한 일이라 경고하고 있고 그리고 오순절은 결코 비성경적인 혼합주의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있다.
오순절 선교신학자 멜빈 핫지는 오순절적인 토착교회를 낳은 특징을, 1. 개인적인 구원의 경험과 성령의 역사 속에서 삶 가운데 체험한 간증, 2. 예배를 통한 간증이 성도들의 간접적인 경험과 실질적인 삶에 대한 적용, 3. 설교의 단순성(간증과 같은), 4. 지속적인 성령의 역사로 복음전파가 계속되어짐이라 했다. 이러한 선교학적인 관점은 우리가 전하고 있는 말씀이 철저한 성경에 기초 했느냐에 대한 끊임 없는 고민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갖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해 주고자 했던 홀랜 버거의 “성경적으로 책임이 있는 혼합주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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