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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에게 신학·교리 교육이 왜 필수적인가 - 성경이 말하는 ‘생각하는 성도’의 필요성 - > 목회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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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에게 신학·교리 교육이 왜 필수적인가 - 성경이 말하는 ‘생각하는 성도’의 필요성 -

남기홍 목사(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순복음천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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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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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교회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국 교회는 오순절·성령운동의 강력한 흐름 위에서 급성장했다. 특히 기하성 교단은 ‘성령 세례’, ‘방언’, ‘신유’, ‘축복의 신학’을 핵심 교리로 견지하며 수십 년간 폭발적인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현장에서는 깊이 있는 성경 이해 없이 감정적 체험에만 의존하는 신자, 이단 사상에 쉽게 흔들리는 성도, 사회적 실천과 교리적 확신이 분리된 ‘기능적 신앙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칼럼은 묻는다. 순복음 신앙의 역동성을 보존하면서도 성경이 요구하는 ‘생각하는 성도(the reflective believer)’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그 답은 평신도 신학·교리 교육의 회복에 있다.


성경이 명령하는 '마음의 변화'와 지식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선포한다. 이 명령은 단순한 감정적 각성이 아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사고와 삶의 틀이 새로워져야 함을 뜻한다. 에베소서 4장 13절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촉구한다. 여기서 ‘아는 일’은 피상적 정보가 아니라, 믿음과 삶을 붙드는 성숙한 인식을 가리킨다.

 

베드로 역시 “항상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벧전 3:15)고 명령한다. 이것은 모든 성도가 복음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청이며, 곧 평신도에게도 신학적 변증과 교리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순복음 교리가 요청하는 신학적 성숙


기하성 교단의 5중 복음과 3중 축복은 그 자체로 매우 풍성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 교리가 감격적 선포로만 전달되고, 성도들이 그 성경적·신학적 근거를 스스로 탐구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예컨대 성령 세례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 기반하지만, 요엘서의 예언과 요한복음의 보혜사 교리, 고린도전서의 은사론과 함께 읽힐 때 비로소 충분한 의미가 드러난다. 교리를 체험으로만 수용한 성도는 “왜 방언이 성령 세례의 초기 증거인가?”와 같은 질문 앞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성경적 토대 위에 교리를 이해한 평신도는 체험을 더 건강하게 해석하고 지킬 수 있다.

 

또한 신유 교리는 단순한 기도 응답론이 아니라, 속죄와 구속의 복음 안에서 이해되어야 할 진리다. 평신도가 이 연결고리를 알 때, 신앙은 주술적 기복이 아니라 십자가 중심의 치유 신학으로 성숙한다.


한국 교회의 현실 - 체험과 지식의 분리


오늘 여러 교회 현장에서는 신앙 연륜은 길지만 기본 교리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적지 않다는 문제가 반복해서 지적되고 있다. 설교와 기도회 중심의 훈련만으로는 삼위일체, 칭의와 성화, 성령의 인격성과 같은 핵심 주제를 충분히 붙들기 어렵다.

 

이 공백은 곧 이단과 세속 사상이 파고드는 통로가 된다. 사도 요한이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경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하성 교단이 강조하는 성령의 역사는 지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의 은사와 말씀의 진리는 함께 갈 때 더 건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이 여러 순복음 교회의 자료와 오순절 신학 설명에서 반복되어 강조된다.


평신도 신학교육의 세 가지 방향


첫째, 교리의 성경적 뿌리를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순복음의 핵심 교리인 중생, 성령 세례, 신유, 재림, 축복을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 그리고 오순절 신학의 해석 틀 안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둘째, 변증과 문화 분별력 훈련이 필요하다. 평신도는 이단의 교리 왜곡과 세속적 세계관, 과잉된 번영주의에 맞서 복음의 핵심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는 베드로전서 3장 15절의 명령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셋째, 삶과 통합된 신학이 필요하다. 교리 교육이 지식 축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가정과 직장, 사회적 책임, 일상의 선택과 연결되어야 한다. 성도가 세상을 성경의 틀로 해석할 수 있을 때, 신앙은 주일 예배의 울타리를 넘어 삶 전체를 변혁하는 능력이 된다.


결론 - ‘생각하는 성도’가 교회를 세운다


호세아 4장 6절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경고한다. 이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오늘 한국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예언적 경고로 들린다. 기하성 교단이 지향하는 성령 충만의 공동체는 동시에 신학적으로 균형 잡히고 교리적으로 훈련된 평신도들로 세워져야 한다.

 

체험은 신앙의 불꽃이다. 그러나 불꽃이 오래 타오르려면 단단한 연료가 필요하다. 그 연료가 바로 성경에 근거한 신학·교리 교육이다. 감동과 지식, 뜨거움과 깊음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이끌 ‘생각하는 성도’를 길러낼 수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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