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의식(마 28장 19~20절)
조승렬 목사(증경총회장, 감사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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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9-04-17 13:55본문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사명을 감당할 때 당한 고난을 고린도후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이런 어려움과 고난을 과연 목사이고 오랫동안 사역한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까 자문자답하며 근심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에 처하고 막상 닥치면 감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편해지려는 마음이 들고 어려움 없이 목회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겨 사명 의식이 약해져 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회심에 대한 간증이 3번 나옵니다. 사도행전 9장, 22장, 26장입니다.
바울의 사명 부분만을 보면 9장에는 예수님께서 다메섹에 들어가면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다(행 9:6)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나니아를 통하여 할 일을 지시받았습니다(행 9:15~16). 그런가 하면 사도행전 22장에는 바울이 직접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행 22:10). 예수님께서 다메섹으로 가면 누가 할 일을 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사도행전 26장에는 사람을 통하여 사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할 일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님이 직접 바울에게 이방인 선교를 향한 사명을 맡겼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간증을 읽으면서 바울은 처음에 남에게 전해들은 사명이기에 사명 의식이 약하였는데 선교를 하고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세월이 갈수록 예수님께서 직접 나에게 준 사명이라 하여 사명 의식이 강해지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며 헌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을 생각하며 우리도 신앙과 연륜이 쌓일수록 사명 의식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변하지 않고 세월이 갈수록 사명 의식이 강해지는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예배의 감격, 기도의 쾌감, 말씀의 신비함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하시면서 처음 행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네 촛대 즉 우리의 교회 그 자리를 옮겨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내가 첫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아니 첫 사명 의식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나의 역할과 사역을 옮겨 버리거나 은퇴를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첫 신앙의 자세를 잊어버리고 세겜에서 살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바울도 아시아에서 선교하다 죽을 위기에 처하여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할 때 마게도니아 환상을 통하여 처음 사명을 회복시키며 유럽 선교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 퇴색된 사명 의식을 회복하고 처음 신앙의 자세, 처음 불타던 선교 열정을 회복하고 사명 의식의 재 충전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나의 사역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성령님의 임재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며 나를 떠나지 않는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까? 이유는 내가 약하고 무능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학력이 낮거나 물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마귀와 싸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은 인간의 정치력이나 경제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건설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쏟아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거룩하고 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나라보다 약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알기 때문에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지도하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인간의 수단과 방법, 정치력, 물질의 풍부함이 아니라 오직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시대적 문제는 절대성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가 상대적인 가치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나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사사 시대처럼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앙도 예수님만 구원이 있다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든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이 같다고 하여 신앙의 다원주의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는 핍박을 받고 비난과 조롱이 있어도 단호하게 오직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만약에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고 추구하는 가치가 같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헛되이 죽은 것입니다. 나의 사명 의식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서 불타고 성취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만을 사랑하고 섬기며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 의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결코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의 수호자요 변호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이를 먹고 목회의 연륜이 쌓일수록 사명 의식이 더 강해지기를 바라면서 바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고 사명 감당해야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사명감으로 강한 다짐을 하면서 죄 많은 세상의 한 모퉁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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