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가?
강성현 목사(김포지방회장, 주는교회)
페이지 정보
작성일26-10-07 14:55본문

얼마 전 한 목회자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교회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오늘의 교회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언어와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걸까요?
10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스마트폰과 SNS가 지금처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TV보다 유튜브를 많이 보고, 긴 글보다 짧은 영상을 먼저 접합니다. 검색창에 질문하기보다 인공지능에게 질문하고, 필요한 정보를 기다리기보다 즉시 얻기를 기대합니다. 한 세대가 바뀐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정보를 소비하고 관계를 맺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문득 목회자인 제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가?”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10년 전의 방식으로 목회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도들의 삶은 달라졌는데 나는 과거에 익숙했던 방식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정작 그들이 무엇을 듣고 무엇을 고민하며 어떤 세상을 살아가는지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결국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교회는 시대의 흐름에 뒤쳐질 수밖에 없고, 문화에 민감한 다음세대를 끌어안을 수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변화라는 필수불가결한 도전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물론 복음을 담는 그릇은 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복음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진리를 타협한 것도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복음을 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말씀, 회개와 믿음, 거룩한 삶,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복음의 본질은 시대가 바뀐다고 달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언어와 교육의 방법, 전도의 방식과 교회의 소통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목회자의 말투와 설교 전달 방식도 시대에 따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복음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달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전달자의 책임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설교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세계적인 목회자들의 설교가 넘쳐나고, 성경 강해와 신앙 콘텐츠도 손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교회를 떠나고 있을까요? 더 이상 복음이 듣기 싫어졌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복음이 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목회자에게 가장 어려운 시절은 교회가 작았던 시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예배가 안정되고, 사역 시스템이 갖추어진 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한때 우리에게 새로웠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긴장감을 빼앗아 갑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10년 전에 효과적이었던 설교 방식이 오늘도 반드시 효과적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과거에 은혜 받았던 예배의 형식이 다음 세대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가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도 배우고 있는가?” “나는 지금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나는 지금도 시대를 읽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복음을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는가?”
AI 시대를 맞아 목회자는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을 배워야 할 수도 있고, 젊은 세대의 언어를 이해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목회자가 좋은 목회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관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외면했던 사람들을 만나셨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낮추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목회자는 바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교회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만도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이 제대로 들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목회자인 우리 자신에게 다시 질문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나는 어떠한가?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는가?” “나는 성도들의 삶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나는 다음 세대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변화하는 시대를 탓하면서 과거의 성공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오늘도 변하지 않는 복음을 가장 온전하게 전하기 위해, 변해야 할 나 자신을 기꺼이 내려놓고 있는가?”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질을 붙들기 위해 비본질은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복음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가 아니라, 목회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시작되는 작은 질문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목회자라면, 하나님께서 오늘도 새로운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변화한 것은 세상이었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복음은 여전히 사람을 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