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역의 시간을 담아내는 이야기
추성호 목사(광주지방회장, 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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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21 14:0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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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생아의 첫 울음소리로부터 수 차례의 실패의 터널을 지나며
이 세상에 막 태어난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인구 절벽의 시대에 신생아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는 미래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한 가정에서도 신생아의 첫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은 서로 축하하며 감동과 감격의 마음을 나눕니다.
그러나 정작 신생아의 울음소리엔 그 자신의 태어남을 축하하고 축복을 느끼는 울음소리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사뭇 놀람과 불안과 짜증과 공포를 담아내고 있는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로 느껴집니다. 마치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갑작스레 다가온 차가움과 충격의 세상을 어찌 맞이해야 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울음소리처럼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울고 있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태어남이 축복이라 이야기합니다. 마치 우리의 믿음의 삶의 첫 시작과도 같이,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삶의 처음 순간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사역을 위한 길을 떠날 때,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감격과 축복으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왠지 나 자신만큼은 분명히 비추고 있는 환한 빛 가운데서도 앞이 보이지 않은 채, 어찌할 줄 모르며 초라하게 눈물 흘리고 있던 청년 사울과 같은 심정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의 인생의 날이 “120년이 되리라”(창 6:3) 말씀하신 이후, 노아에게는 한 사명이 주어졌지요. 하나님은 인류 심판의 날에 고페르 나무로 노아 자신의 구원을 위해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좋은 일일까요? 온 세상이 죄악으로 캄캄하고 구원의 소망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할 때,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인류의 멸망으로부터 자신의 구원을 위해 사명이 주어졌던 노아. 거기에 더하여 구원의 방주를 짓기 위한 준비로부터 모든 기술적 설계도를 그냥 주시기까지 모든 것이 은혜요 감격스러운 축복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순간 어쩌면 노아가 느끼는 찰나의 순간은 마치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저의 지나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30년전, 1997년 인도선교사로서 인도땅을 밟으며 사역의 첫걸음을 내딛었던 순간에도, 1999년 평생을 구별 되어진 주의 종으로 살도록 목사 안수를 받는 순간에도, 인도땅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교회를 처음 개척하던 순간에도, 분명 빛은 찬란하게 비취이는데 신생아의 울음소리와 같은 울음으로 매번 소리내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저의 지나온 실수와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의 실패의 순간을 떠올리며 노아의 방주를 짓는 120년 시간을 따라 발칙한 상상을 해보며 한가지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노아는 120년 인생의 시간 동안 방주를 지으며 과연 몇 번의 실패를 맛보았을까? 심지어 완전한 방주의 설계도를 쥐고 있었던 노아에게 수 차례 만나는 실패는 과연 노아의 인생에 어떤 의미였을까?’
방주를 짓기 위해 벌목을 하고, 가공, 조립을 하고 방수처리를 하고, 수 많은 공정 가운데, 사명을 받았지만, 방주를 지어보지 않은 노아에게 일사천리로 되어지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설계도가 있다한들 공정의 순간순간 실패를 맛보는 순간들이 있었다면, 심지어 모든 것을 다 마쳐가는 공정율 90% 이상에 이르렀는데, 그 순간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처음부터 그 과정을 다시 시작하고 쌓아가야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첨단의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를 통해서도 붕괴사고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1월 11일 광주광역시에서 대한민국의 대표적 건설회사인 현대산업개발에서 건축중인 아파트가 62%라는 공정율 가운데서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하물며 그 오래전 노아라는 사람이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방주를 완성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그가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면 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다(창 6:22)고 말합니다. 사실 노아의 실패의 이야기는 기록 되어지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노아의 실패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렇게라도 저의 지나온 날의 실패의 시간들을 위로 받고 싶어서 일지도, 또한 지나온 실패의 순간들과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실패의 순간들을 합리화 시키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심장기형이라는 희귀질환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린 시절 KBS의 국민모금운동을 통해 한차례의 수술을 받고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선교지에서 다시금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겪으며 몇 년전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심부전 검진을 위해 제가 사는 전남광주시에서 KTX를 이용하여 서울대병원을 다녀왔습니다. 광주송정역에서 용산역까지 KTX로 이동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터널을 지나갔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이 지나치는 터널들이 인생의 중간중간 실패의 순간들이라면.’ 그런데 어떤 터널들은 다행히도 무척 짧아 금방 지나갑니다. 반면에 어떤 터널들은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을 지나야 하는 터널들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터널들은 방금 지나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나타나는 터널들도 있었구요. 심지어 KTX 광명역은 터널과 터널 사이여서 승강장만 빛이 들어오는 구조로 되어 있더군요. 실패의 터널에서 잠시 반짝 빛을 보고 또 실패의 터널로 들어가는 순간의 이야기들이라면.
그럼 KTX를 타고 방향을 따라 서울을 가는 사람에게만 이 실패의 터널을 지나게 될까요? 승용차로 운전을 하며 서울을 다녀왔던 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전남광주에서 서울까지는 여러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서울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호남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익산평택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등등. 그런데 어느 고속도로를 통해서 가더라도 터널을 지나지 않는 고속도로는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 터널들이 내 인생의 실패와 절망의 이야기가 묻어나오는 터널들이라 할지라도 그 터널은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터널들을 다 지나는 끝은 서울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목회의 일선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그간 10여 년의 시간을 실패의 울분과 불안으로 몸부림치며 마치 신생아처럼 많이 울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다 외치며 그리고 어쩌면 오늘도 실패의 순간을 맞이하고 걸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한가지, 하나님이 노아에게 주셨던 말씀으로 설령 오늘도, 내일도 또 실패라는 터널을 지난다할지라도 다시금 가슴에 새겨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성호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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