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가문의 영성을 배웁시다
이회훈 목사(서울강남지방회 증경회장, 순복음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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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14:5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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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위인 가운데 가장 많이 호명되는 사람 중에 아브라함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며, 이스라엘의 육신적인 조상이다. 아브라함의 실수가 자주 언급되지만 실상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은 하나님의 구속사 가운데 귀중하게 쓰임받은 가문임에 틀림없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문을 사용하셨을까?
시작과 마지막이 되시고, 역사의 주인이 되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분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며 특별히 아브라함의 가문을 사용하셨는데, 그들의 무엇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을까?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나오는 삶”을 말한다면, 아브라함 가문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았을까? 아브라함 가문의 영성은 무엇이었을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영성을 살펴보자.
아브라함은 어떠한 영성을 소유했을까? 아브라함의 생애를 추적해보면 뚜렷하게 드러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 상속자가 없어서 낙심할 즈음에 하늘의 뭇별과 같은 자손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받았을 때(창15:4-6), 약속의 자녀를 생산했을 때, 아들을 번제단에 올렸을 때, 다름아닌 아브라함의 믿음이 빛을 발했다. 아브라함의 영성은 하나님만 믿는 “믿음의 영성”이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4:17-18)
믿음의 반대는 자신을 의지하거나 환경을 의지하는 것이다. 오늘날 믿음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은 많이 있는데, 실제로 믿음의 외로운 길에 들어서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순복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것과 같이 목회자는 돈, 명예, 권력을 의지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을 나누는 삶을 기대하며 아브라함의 믿음의 영성을 배우자.
이삭은 “온유와 겸손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삭의 온유와 겸손을 통해 구속사의 일꾼으로 사용하셨고, 백배의 추수 열매와 범사의 삶에 넓은 땅의 상급을 허락하셨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험으로 자아, 고집이 어려서부터 깨어진 사람이다. 특별히 그랄 땅에 거할 때 블레셋 사람들과 우물 분쟁이 있었는데(창 26:12-15), 이삭은 싸우지 않고 다른 곳에서 거듭해서 우물을 팠다. 이러한 이삭의 온유와 겸손을 통해 하나님은 넓은 땅의 상급을 허락하셨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세기 26:22)
목회자는 온유와 겸손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목회현장에서는 혈기와 싸움이 충만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더 센 교관들에게 훈련받는 모습도 보게 된다. 이삭과 같이 더 넓은 지경으로의 복을 누리길 원한다면 먼저 이삭의 “온유와 겸손의 영성”을 배워야 한다. 오늘날은 정치권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 이삭의 영성이 필요한 때이다. 먼저 목회자와 교회가 이삭의 영성을 반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
야곱은 어떠한가? 야곱은 “자기부인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이러한 영성을 소유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야곱은 머리가 매우 좋은 사람이다. 여러 사람을 속이며 자기애를 추구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기 위해 인간의 머리가 아닌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도록 ‘자기부인’의 학교에 들여보내시고, 교육하셨다. 학기를 마치기 위해 ‘얍복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는 투혼을 발휘했던 야곱은 결국 ‘자기부인’의 학교를 졸업하며 새로운 삶으로 나아갔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세기 32:24-26)
목회자란 야곱에게서 나오는 아집, 고집, 교만, 자기주장을 철저히 죽인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서 나오는 “하나님의 복이 없이는 스스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창 32:27-28). 오늘날 교회, 교계에 무리를 일으키는 야곱이 많이 있다.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자기부인’의 학교를 나오지 않은 까닭이다. 야곱과 같이 이스라엘의 12족장의 아버지요, 이스라엘 형성의 뿌리로 쓰임받는 비전을 갖고자 한다면 먼저 야곱의 “자기부인의 영성”을 배워야 한다. ‘자기부인’의 신학교는 모든 신학교의 원형이다.
마지막으로 요셉은 어떠한 영성의 소유자인가? 요셉이 “꿈과 비전의 영성”을 소유한 자라는 것은 만인이 아는 사실이다. 덧붙여서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충성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누고 싶다. 그의 꿈과 비전이 마침내 이집트의 총리로 실현되고, 이후 이스라엘의 모판을 형성하고, 돌보게 되며 나중에 출애굽의 역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성경의 주된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셉의 생애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요셉은 있는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보디발의 가정총무의 직임에 충성스러웠고(창 39:4-5, 9-10), 왕의 신하들이 갇혀있는 감옥에서도 충성스러웠으며, 후일에 야곱의 식구들을 돌보는 데도 충성스러웠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창 45:11)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회에 충성스러운 사람이어야 한다. 주변을 기웃거리느라 목이 늘어져서는 곤란하다. 짧은 인생, 기한이 정해져 있는 목회 여정에 충성해도 시간이 모자라다. 요셉의 영광을 기대한다면 꿈과 비전의 영성과 함께 “충성의 영성”을 기르기 위해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준비된 영성을 가진 자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목회자는 무엇보다 영성 관리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성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아브라함 가문의 영성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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