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립 교회 살리기
엄진용 목사(교단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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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7 10:1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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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국토가 황폐화 됐지만 부지런한 국민성과 자녀 교육열에 힘입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경제 성장과 농촌을 떠나 다른 직업에 취업할 기회를 찾기 위해 도시로 대거 이주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했다. 즉 대도시, 신흥 공업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 쏠림 현상이 가중되는 도시화가 시작된 것이다.
자녀들은 공부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기 위해 고향을 떠나 점차 도시로 향했고, 고향에서 땅을 터전으로 농사를 짓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키운 소를 팔고, 삶의 터전인 땅까지도 팔았다.
1970년대부터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서 살게 되면서 본격적인 도시화 시대로 접어들었고, 도시로 젊은이들이 이주하면서 현재 농어촌 지역은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고령화 시대를 맞았다. 일할 인력이 없는 농어촌 지역은 취업비자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일꾼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농어촌 교회 역시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어르신들만 남게 된 이곳 교회들은 다음세대를 염려하기 전에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시대를 맞았다.
나 역시 전에 언급한 어르신들이 가득한, 그나마 그분들도 거의 안 계신 아버지 교회에 내려왔을 때, 어떻게 이 교회를 살려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교회를 떠났던 분들이 돌아오면서 교회 구석구석에 활기가 넘쳐나고, 덕분에 힘 없이 계셨던 아버지는 새로운 힘을 얻어 활기차게 생활하고 계신다.
요즘 아버지 교회에 내려와 사역을 하면서 농어촌교회, 미자립교회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내 어깨를 누르고 있다. 과거 내가 수원에서 목회 할 때 농어촌 미자립교회 100곳을 선정해 10만원씩 30년 동안 보내드렸다. 지금도 재정적으로 안정된 교회들, 소위 한국의 중·대형교회들이 미자립교회들을 돌보고 있다.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내가 막상 농어촌 미자립교회 현장에 와보니 ‘차라리 50만원씩 20교회를 도왔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직도 농어촌 교회에는 천원 헌금하기도 어려운 노인밖에 없는 곳이 많다. 하지만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품은 소명자라면 선교지와 같은 이 곳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농어촌 교회가 없으면 그 영혼은 구원받을 기회가 평생 없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도움 차원에서 한단계 나아가 목회자의 삶을 돌아보고, 그 지역에서 교회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물질적, 인적 지원이 필요하다.
누구도 쉽게 발벗고 나서지 못하며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귀한 사명 감당하는 목회자와 교회와 함께 책임감을 갖고 지키기 위해서 중·대형교회와 미자립교회와의 일대일 MOU를 맺는다면, 농어촌에 있는 미자립교회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이 발전하고 성장하기까지 기성세대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농어촌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성장해 도시로 나온 지금 세대들은 이제 그 고향에 있는 교회들을 돌아볼 때가 왔다. 결코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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