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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이사야 44장 6절)

이바울 목사(경남지방회장, 거창소만순복음교회)

페이지 정보

24-08-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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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울 목사1.jpg

어느 신문기사에서 오버뷰 이펙트(the overview effect)란 용어를 봤습니다. 작가 프랭크 화이트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주비행사 에드거 미첼, 크리스 해드 필드 등’을 통해 가족, 친구들만 생각했던 좁은 시선이 우주에 다녀오면서 인류에 대한 사랑과 친밀감이 확대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알리며, 이러한 현상을 ‘오버뷰 이펙트’라 정의했다고 합니다. 오버뷰 이펙트는 아주 높은 곳에서 큰 그림을 보고 난 후 일어나는 가치관의 변화로 폭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효과를 뜻한다고 합니다.

 

오버뷰 이펙트는 영적인 측면에서도 설명될 수 있습니다. 보이는 이 땅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영원의 세계에 눈이 열리면 그동안에 관심을 두었던 모든 일들이 너무나 사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오버뷰 이펙트 고백을 사도행전에서만 9, 22, 26장에서 세번 반복합니다. 그 중 행 22:3에 자신의 출생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소에서 태어났고 당시 최고 학문의 중심지였던 힐렐 학파 가마리엘 문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 22:4~5 그때 자신의 삶의 목적이 어떤 것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1. 나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죽였습니다. 

2. 나는 수많은 남녀노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일에서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내 증인입니다. 

3. 나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씨를 말리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던 사람입니다. 내가 다메섹으로 가다가 빛 가운데서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예수님은 교회와 자신을 일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빌 3:7~12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이전에 가치를 두었던 것들을 배설물로 보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새로운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낙심되고 포기하고 싶을 때 공원 묘원을 찾아가 보는 혼자만의 습관이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공원 묘원을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바라보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각각의 삶을 마친 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누군들 이 자리를 비켜 갈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나의 남은 삶을 성찰(省察)해 봅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장신회 신학대학에 강의를 몇년 했었습니다. 그런 중에 코로나로, 이제 전쟁으로 못가고 있습니다. 어느 해인가 강의를 마치고 모스크바 남쪽 200㎞ 지점에 야스나야폴랴나에 있는 톨스토이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봉분도 비석도 화려한 장식도 없이 거기 이렇게 있었습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인생을 사색(思索)해 볼 수 있는 좋은 곳이 묘원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처럼 주를 만나고 자신의 인생을 드리고 믿음을 지키다 돌아가신 신앙인의 묘지 앞에 서면 자기성찰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복음의 씨앗을 들고 찾아와 이 땅에서 죽기까지 헌신한 선교사님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경남지역 복음화와 개화를 위해 헌신하다 별세한 ‘순직 호주 선교사묘원’이 경남 마산공원묘원 안에 조성됐습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따라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생활이 보장된 상황을 내려놓고 조선 선교 사역을 택한 이,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펼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은 이, 미처 꽃피어 보지도 못한 채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은 선교사의 자녀들까지 누구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사연과 치열하고 뜨거운 선교 열정을 통해 그들의 짧고 긴 생애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묘원은 자신의 신앙을 반추해 볼 수 있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사색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살았을까요. 이들이 광신도였을까요? 할 일 없는 사람들이었나요? 이것은 목회자와 성도가 오늘 숨 쉬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여호와께서만 역사의 창시자요 역사의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의 시작도 종말도 하나님이십니다. 신학의 결론도 설교의 결론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목회자의 주된 임무가 전도와 선교입니다. 

엡 4:11.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선교입니다. 행 1:3~8 …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교회는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적 사명은 전도입니다. 공부가 없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며 치료가 없는 병원은 병원이 아니듯이 선교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선교이며 선교가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선 곳이 땅 끝입니다. 지역 전도, 그것은 지역 교회의 책임입니다. 

 

기독교의 지난 2천년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 지도자와 공동체가 다른 일에는 열심을 내면서도 가장 불순종 한 것이 언제나 전도였습니다. 저는 지난 34년간 오직 교회당 밖 불신자 숫자를 줄이기 위해 선교사적 마인드로 살았습니다. 교회당 내부 숫자에 목표를 두는 성장주의는 복음과는 상관없는 자칫 자본주의를 기반한 상업주의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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