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설교의 흐름(Ⅺ)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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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4-06-25 10:18본문
프레드 크레독, 새로운설교학 운동 개화기 열어
『권위 없는 자처럼』 통해 다양한 설교 이론 탄생해
언어, 성경연구, 해석학의 변화에 주목해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6-2-2.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개화기(1970년대)
새로운 설교학이 발흥하고 발전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던 학자 중 하나는 프레드 크레독이다. 그가 1971년도에 펴낸 As One Without Authority - 우리나라에서는 『권위 없는 자처럼』(김운용 역, 예배와설교아카데미, 2003)으로 번역 - 은 설교학계의 판도를 바꾸어놓은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다양한 이론들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를 근거로 다양한 설교 방법론 역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서는 새로운 설교학 운동 개화기의 중요한 인물이 프레드 크레독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928년 미국 테네시 주의 훔볼트에서 태어난 프레드 크레독은 그리스도 제자들 교단(Disciples of Christ)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73년부터 은퇴하던 1993년까지 20여 년을 에모리대학교 캔들러신학대학원에서 설교학와 신약학을 가르쳤다.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설교학자인 동시에 설교자였으며 뉴스위크가 선정한 영어권 12대 설교자 중 한 사람이었다. 2015년 4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크레독은 『권위 없는 자처럼』에서 전통적인 설교학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설교학 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새로운 설교학 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설교와 관련된 언어, 성경연구, 해석학 분야에서 이미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학적으로 사람들은 언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크레독의 분석이었다. 이것은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였다. 동시에 교회가 가진 언어의 영향력 역시 축소되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교회와 관련된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지도 못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믿음의 세계를 보다 생명력 있게 전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늘 전통과 과거의 언어들에 얽매여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크레독, 『권위 없는 자처럼』, 40). 그러나 언어와 관련해 그와 같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설교자의 언어 사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된다는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언어가 새롭게 정의될 수만 있다면 설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불식될 수 있다는 것이 크레독의 생각이었다. “소리는 항상 존재해왔고 변함없는 존재적 경험”이기 때문이며 자유로움, 다양성, 자발성이라는 현대문화의 속성은 고스란히 설교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연구에서의 변화 역시 새로운 설교학 이론의 등장을 촉진시켰다. 크레독은 당시까지 주류를 이루었던 역사비평방법이 설교 사역의 걸림돌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성경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야 할 역사비평이라는 성경연구방법이 오히려 설교자들의 성경 이해에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역사비평은 성경 본문의 의미를 불명확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었고 설교자와 성경의 세계 간에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도 역사비평방법이 가진 성경 본문의 기원과 원자료에 대한 관심은 설교를 언제나 과거 지향적인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역사비평방식에 반하여 등장한 것이 문학비평이다.
문학비평의 등장은 설교학자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인식시켰다. 첫째, 성경의 기본적인 형태가 ‘이야기’이며 성경을 근거로 설교하는 설교 역시 삼대지라는 형식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성경 본문은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현재와 미래 역시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들은 성경을 보다 신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성경은 교회 생활의 규범이며, 교인들의 삶과 신앙생활을 견고히 한다.
성경에 대한 해석학과 관련해서 크레독은 세 가지 사실을 설교자들이 새겨야 한다고 권면한다.
첫째, 하나님이 성경 본문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의 양식’을 갖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성경 말씀이 선포이며, 이를 근거로 행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사실을 설교자는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크레독은 설교자가 성도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 성경을 해석한다는 자세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실한 청자(聽者)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사도 바울이 설교를 통해 세계복음화를 꾀했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음을 명심하라고 당부한다.
이어 로버트 펑크의 표현을 인용한다. “말씀을 선포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말씀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때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것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크레독, 『권위 없는 자처럼』, 94). 마지막으로 해석학과 관련해서 설교자들이 새겨야할 사항은 기독교회가 생겨난 이후로 ‘말씀을 전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크레독은 설교란 말씀의 선포(spoken word)였고, 말씀공동체를 전제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말씀 선포로서의 설교는 공동체 안에서 행해졌으며 공동체 속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통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는 “생명력 없는 기록(record)으로서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행동(acti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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