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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Ⅳ) > 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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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Ⅳ)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은정 작성일24-02-13 11:10

본문

 

1980년대 초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케리그마 설교학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건으로서의 설교 이해

설교자는 하나님 말씀 대언하는 대사(大使)

 

조지훈 목사.jpg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5. 케리그마 설교학

 

오늘날 대부분의 설교학자는 현대설교학을 역사적으로 구설교학(the Old Homileic)과 새로운 설교학(the New Homiletic)으로 구분한다. 이와 같은 구분은 20세기 중반에 출간된 몇 권의 저작들, 예를 들어 그래디 데이비스의 Design for Preaching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8), 프래드 크래독의 As One without Authority(Nashville: Abingdon Press, 1971)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 저작들은 기존 설교 이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설교 이론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에서 논의되고 있는 많은 주제가 이 저작들에 맹아 형태로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루시 로즈는 구설교학 진영을 전통적인 설교학과 케리그마 설교학으로 좀 더 세분하고 있다. , 현대 설교학을 전통적인 설교학, 케리그마 설교학, 새로운 설교학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제시하는 설교의 목적, 설교의 내용, 설교의 언어, 설교의 형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시간부터는 케리그마 설교학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5-1. 케리그마란 무엇인가?

 

케리그마 설교학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케리그마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헬라어 케리그마’(κρυγμα)는 보통 소식’, ‘선포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요나가 전한 설교(12:41; 11:32), 복음의 선포, 선포의 내용(16), 구원의 능력을 가진 복음의 선포(고전 1:21). 예수를 전하는 것으로서의 복음(16:25) 등이 신약성경에서 제시하는 케리그마가 가진 의미들이다(신약성서 신학사전, 496). 한마디로 케리그마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선포했던 복음의 핵심적인 선포 내용이다.

 

C. H. 다드는 신약성경이 말하는 케리그마의 내용을 7가지로 요약했다.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되었고, 새로운 시대(the new age)가 도래하였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다; 예수님은 현재의 악한 세대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약의) 말씀을 따라 죽으셨다; 예수님은 장사되셨다; 예수님은 말씀을 따라 삼 일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주님으로 높임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심판자이며 구원자로 다시 오실 것이다 (C. H. Dodd, The Apostolic Preaching and Its Development, 28). 케리그마 설교학을 주창하는 학자들은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는 케리그마를 전달하는 것이 설교라고 생각한다. 사도들이 설교했던 복음의 내용을 발견하고 그것을 오늘날 선포하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5-2. 케리그마 설교학이 제시하는 설교의 목적

 

케리그마 설교학의 전성기는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 초까지이다. 케리그마 설교학이 제시하는 설교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신약성경에 담긴 케리그마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2천 년 전에 기록된 신약성경에서 케리그마를 발견해 오늘날의 청중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설교자가 완수하기에는 불가능한 임무이다. 1세기의 언어와 개념으로 옷 입혀진 케리그마를 21세기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리그마 설교학자들에게 케리그마의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임재라는 개념을 통해 극복된다. , 1세기에 기록된 신약성경에서 발견된 케리그마가 21세기 청중들에게 전달되고 적용되도록 하는 것은 인간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가 행해지는 예배 자리에 임재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께서 설교자를 통해 그곳에 모인 청중들을 향해 진리의 말씀, 곧 케리그마를 선포하시는 사건, 이것이 케리그마 설교학자들이 이해하는 설교의 목적이다.

 

설교를 그리스도의 임재 또는 그리스도의 선포라고 이해하는 케리그마 설교학은 설교자와 회중 사이의 간격을 전제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청중과 그리스도의 임재를 중재하는 자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설교학자 토마스 롱은 이와 같은 케리그마 설교학에 기초한 설교자 상()대사’(the herald)라는 이미지로 설명한다

 

롱은 다음과 같은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케리그마 설교학의 특징을 요약하고 있다. “선포는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으로, ‘마치 왕이 대사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과 같다”(토마스 롱, 증언하는 설교, 38). 케리그마 설교학자들은 설교자가 설교를 행하지만 실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신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포할 메시지를 전달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전달받은 메시지를 가감 없이 청중들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 케리그마 설교학에서 설교자의 임무는 성경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성경에서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 롱은 이와 같은 설교자 이해는 신적 역할만 강조되고 인간의 역할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롱의 지적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설교에서 인간 설교자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사로서 설교자는 자신보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되도록 자기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오직 메시지만이 중요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그의 사명은 다한 것이다.” 둘째, 메시지와 청중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청중들의 삶에 대한 관심, 설교내용을 청중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예화나 수사학적인 장치들은 케리그마 설교학자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들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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