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ⅩⅨ)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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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27 10:28관련링크
본문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되기 전에 선포된 것
설교자는 선포자이기 전에 하나님 말씀 듣는 자가 되어야
선포된 말씀은 시간 속에서 움직여가며 사건을 일으켜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20세기 설교학을 대표하는 저서 중 하나인 『권위 없는 자처럼』를 시작하면서 크레독은 설교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일곱 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가 여전히 필요한 세 가지 이유를 언급했다.
특히 설교의 존재 이유를 말이 가진 속성과의 연관성 속에서 찾았던 크레독은 우리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이해’에 이르는 것이기에 성경의 용어들을 정의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설교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한다.
성경 해석의 목적은 하나님이 성경 본문을 매개로 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 이해, 성경 해석에 대해 몇 가지를 전제한 뒤 크레독은 성경 해석학과 관련해 설교자가 명심해야 할 일들을 제시한다. 이것은 설교자가 성경 해석을 할 때, 어떤 전제(pre-understanding)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이다.
첫째,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본질적으로 선포의 양식을 가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 본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물론 성경은 ‘글’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러나 성경이 글로 된 책으로 우리에게 전달된 것일뿐, 성경의 내용들은 기록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과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고백, 찬양, 기도, 선포였었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할 때, 하나의 문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하나의 선포라고 이해해야 한다.
“교회는 선포된 말씀을 통하여, 말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 지배받아 왔다”(『권위 없는 자처럼』, 92).
그런 이유로 설교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그에 근거해 선포되는 자신의 설교가 결국은 누군가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행동이며 구원의 사건을 일으키는 통로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성경이 그 하나님의 분명한 선포라며, 설교자는 언제나 자신의 설교를 분명한 하나님의 선포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이해를 통해 설교 사역에 임해야 한다.
둘째, 설교자는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기 전에 듣는 것, 성경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모든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豫’(미리 예)+‘言’(말씀 언), 곧 ‘미리 말씀하는 것’(fore-telling)이 아니라, ‘預’(맡길 예)+‘言’(말씀 언)으로서 ‘맡겨진 말씀을 전달하는 것’(forth-telling)이다(차준희, 『예언서 바로읽기』, 18).
“예언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며 “예언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나라에게, 특정한 예언자를 통해서, 특정한 백성들에게 한 말”이다(차준희, 18).
구약 예언자의 전통은 신약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바울의 고난에 대해서 예언했던 아가보(행 11:27-28),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행 13:1)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예언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신약의 예언자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조차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선포하셨다면 오늘날 설교자들이 어떤 자세로 설교 사역을 감당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설교자는 설교 사역을 위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 선포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크레독은 독일의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폰 라드의 글을 인용해 설명한다.
“말씀을 선포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말씀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때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것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단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Gerhard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1965, 2:86).
또 폰 라드의 주장과 더불어 이사야 50장 4절을 인용한다. “주 야훼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시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결국 크레독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통해 자신이 들은 말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할지, 그 방법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이후 살펴보게 될 크레독의 ‘귀납적 설교 방법론’의 근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 - 시, 노래, 예언, 편지, 이야기, 우화, 잠언 등 - 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의 방법 역시 다양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이 현대설교학에 미친 크래독의 공헌 중 하나이다. 성경 해석과 관련해서 설교자가 기억해야 할 세 번째는 초대교회로부터 ‘말씀’이란 언제나 ‘선포된 말씀’이었다는 사실이다. 크래독은 설교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선포된 말(spoken word)이었으며, 선포된 말씀은 언제나 말씀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설교가 선포된 말씀이라는 의미는 첫째, 설교가 선포된 ‘소리’라는 것, 둘째, 소리는 흘러간다는 점에서 ‘시간’과 관련이 있으며, 셋째, 흘러간다는 점에서 ‘움직임’(movement)을 가진다는 것, 넷째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선포된 소리는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사건’(event)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말씀이라 함은 선포된 말씀”을 의미하며 “생명력 없는 기록(record)으로서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행동(action)”으로 이해해야 한다.
선포된 말씀을 소리, 시간, 음직임, 사건, 행동과 연결시킨 크래독의 설교학적 이해는 이후 수많은 학자에 의해서 계속해서 연구되었고 이것이 그가 20세기 현대설교학의 대부(大父)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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