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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ⅩΙ) > 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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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현대 설교의 흐름(ⅩⅩⅩΙ)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설교학)

페이지 정보

25-09-30 09:16

본문

 

 

찰스 캠벨,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개인주의적 한계 지적

하나님은 단순한 체험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교회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역할 감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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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전통적인 설교학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설교 발전에 공헌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설교에 있어서 성경에 대한 강조, 설교 형식에 대한 강조, 감성의 강조, 설교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등은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찰스 캠벨 역시 그와 같은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공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공헌에도 불구하고 캠벨의 관점에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몇 가지 문제점들을 노정하고 있다. 캠벨이 지적하는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첫 번째 문제점은 인간 체험의 지나친 강조이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설교의 목적은 성경 내용의 지적인 전달이었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설교의 목적이 지적인 전달을 넘어 말씀에 대한 청중들의 경험(event)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캠벨은 그와 같은 경험 중심의 설교 방식이 신학적 상대주의(theological relationalism)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인간의 체험이 없이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캠벨, 프리칭 예수, 227). 캠벨이 인용하고 있는 토마스 롱 역시 청중의 체험을 중시하는 설교학적 자세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한다. “청중의 내면에 종교적인 체험을 얼마나 잘 불러일으켜 낼 수 있는가의 능력으로만 설교를 평가하려는 것은 신학적을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감동되기를 원할 때마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그러한 분도 아니며, 또한 언제나 우리를 깊게 감동시키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토마스 롱, 증언으로서의 설교(쿰란출판사), 40-41). 이렇듯 청중의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설교가 지속될 경우 기독교의 하나님은 더 이상 성경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하나님이 감당하고 있는 독특한 역할에 의하여 인식되지 않고, 하나님과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인간의 체험 속에서만 인식될 뿐이다.”(프리칭 예수, 228).

 

두 번째로 캠벨이 지적하는 새로운 설교학의 문제점은 기독교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의 약화이다. 이 문제점은 첫 번째 문제점과 연결되어 있다. 캠벨은 설교를 통한 개인의 체험 강조가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개인의 체험에 대한 강조는 결국 미국의 자유스러운 일반사회가 그러한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의 신앙을 개인의 영역에만 국한시키려는 결과를 초래한다.”(프리칭 예수, 229). 특히 새로운 설교학에서 제시하는 열린 결론은 그와 같은 신앙의 개인주의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캠벨은 지적한다. 이런 모습이 부정적인 것은 기독교 신앙이 개인의 내적인 영역으로 제한됨으로써 복음이 가진 공적인 권한이 사라져버린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찰스 캠벨이 지적하는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문제점은 공동체와 관련된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목소리 높여 말했던 것이 그런 교회 내의 다양성의 인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는 그런 다양성 가운데 하나의 통일성이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에베소서 220-22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설교를 통한 개인의 하나님 경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강조점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경험인지가 중요하다. 캠벨은 새로운 설교학에서 강조하는 경험이 매우 개인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런 주장을 통해 교회는 단지 어떤 유사한 체험을 함께 나누고 있는 개인들이 잠시 교회에 함께 모여 구술(口述)에 의한 의사소통이라는 사건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는 공동체이다. 설교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세워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 “개인주의적이고 체험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설교에 내포된 공동체적인 차원을 결코 적절하게 취급할 수가 없다.”(프리칭 예수, 229).

 

넷째,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가진 약점은 그들의 언어 사용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지적이고 명제 중심의 설교 언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시적이고 은유적인 설교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설교가 가지는 공동체성이라는 특성과 연관해 생각해본다면 설교 언어라는 것은 결국은 공동체에 기반해 신앙공동체 안에서 습득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청중들에게 설교 언어는 공동체의 언어 습관과 소통 방식을 습득하는 통로이다. 예배란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공동체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요, 개인의 언어를 공동체의 언어로 변화시키는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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