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관련된 4가지 세계(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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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5 13:1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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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관련된 4가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
본문의 세계, 회중의 세계, 설교자의 세계, 목회 환경의 세계를 잘 이해해야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편집자주>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설교의 3가지 요소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회중에 대해 살펴보았다. 설교자는 성경 말씀과 회중을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연결 작업 과정에 4가지 세계가 관련되어있다는 사실을 설교자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경 본문의 세계, 회중이 살아가는 세계, 설교자의 세계, 목회 환경(교회)의 세계가 그것이다.
(1) 성경 본문의 세계
성경은 진공상태에서 기록되지 않았다. 수천 년 전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17). 특정한 정치, 종교, 문화 환경 속에서 특정한 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이 기록되었던 시대의 언어와 세계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성경 기록에 사용되었던 언어이다(약간의 아람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설교자로서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해 잘 알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대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관한 자료들을 잘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경을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에 히브리어와 헬라어 관련한 유용한 사이트들이 많고 문법 내용도 쉽게 풀이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문법 용어들에 친숙해지는 것이다. 다만 설교에서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사용하는 경우 단어 한두 개로 본문 전체의 의미를 담아내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우리 말에서도 단어 한두 개를 사용해 저자의 생각 전체를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다. 의미라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단어와 단어가 만난 문장으로, 문장과 문장이 만난 단락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를 위한 본문 선정에서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일이 그 단락의 시작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단락의 처음과 끝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 단락’을 찾는다고 한다. 단어나 구절 한두 개가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보다 넓은 차원의 단락을 찾는 것이다.
또한 성경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을 아는 것이 성경 이해에 도움이 된다.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상황들을 의연 중에 자신의 글 속에 담아내기 때문이다. 설교자로서 가장 먼저는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 정도는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왕정 국가가 되었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다가 어떤 나라에 의해 각각 멸망했으며 어떻게 재건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길고긴 이스라엘의 역사가 구약성경을 읽어내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마련해주고 나아가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사역과 사도들의 사역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성경과 관련된 문화적인 배경을 안다면 설교자들은 성경 내용을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고 더 풍성한 내용을 회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0장 46-52절을 설교 본문을 했다고 해보자. 이 본문은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맹인 바디매오를 치료하는 사건의 기록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부르셨을 때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막 10:50) 예수님께 갔다. 당시 걸인들은 길가에서 겉옷을 펼쳐놓고 구걸했다. 또한 겉옷은 잠자리에서 이불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볼 때 바디매오가 자신의 겉옷을 내버렸다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향해 뛰어가면서 삶의 중요한 도구를 내던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겉옷에 대한 배경지식을 앎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바디매오의 믿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고 설교를 통해 그런 내용을 회중에게 전달 할 수 있다.
(2) 회중이 살아가는 세계
성경 저자들이 진공의 세계에 살지 않았듯이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 회중 역시 진공 속에서 살지 않는다. 그들 역시 그들이 사는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세상에서 회중들은 더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설교자들이 회중이 사는 세상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현웅 교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인간이 어떤 대상과 서로 간 어떤 것을 나누어 주고 함께 공유하는 모든 과정”이라고 정의한다(이현웅, “수사학,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기독교 설교의 상호적 이해와 적용”, 52). 이 정의를 설교에 적용해보면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설교는 설교자가 자신이 묵상하고 연구한 성경의 내용을 회중에게 나누어주고 함께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나누고 공유되는 것은 설교자가 깨달은 성경의 의미일 것이다. 이 의미가 회중들에게 잘 전달되고 그들 역시 그 내용을 깨닫기 위해서는, 즉 설교자와 회중 사이에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설교자는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성경의 내용을 회중의 문화에 맞게, 회중의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 신학자로서 설교자는 성경의 내용과 회중의 삶을 신학적인 눈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파악한 내용을 신학적인 언어로 풀어내서는 안 된다. 신학적인 언어는 신학적으로 코드화된 언어다. 코드에 대해 선이해가 없는 회중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다. 따라서 신학적인 언어를 회중의 언어로 풀어주는 디코딩(de-coding) 작업이 필요하다. 어려운 용어를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회중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야 한다. 그들이 접하는 문화를 알아야 한다. 그들이 읽는 책이 무엇이며, 그들이 자주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무엇인지, 그들이 자주 보는 영화나 드라마가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회중의 문화를 알고 그들의 세계를 아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하나님 나라를 알리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담아내기 위한 그릇으로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아는 것이기에 그로 인해 복음의 내용이 변질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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