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3요소’에 대한 이해(Ⅱ)
페이지 정보
23-11-02 13:35관련링크
본문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청중의 역할은 수동적
새로운 설교학 통해 청중의 중요성 부각돼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3)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회중
설교의 3가지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자, 그 말씀을 듣는 회중이다. 시대에 따라 3가지 요소 중 어느 한 요소가 강조되고는 했지만 1960년대 말 ‘새로운 설교학 운동’(The New Homiletic Movement)이 등장하기 전까지 말씀을 듣는 회중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었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 진영에 있는 학자들 대부분은 이와 같은 사실에 동의한다. 특히 루시 앳킨슨 로즈의 연구는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회중에 대한 관심이 미비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루시 앳킨슨 로즈, 『하나님의 말씀과 대화 설교』, 이승진 역[서울: CLC, 2010]). 로즈는 설교의 목적, 내용, 언어, 형식 등을 기준으로 전통적인 설교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전통적인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청중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설교자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다. 설교자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며 왜 그것을 믿어야 하는지의 이유”를 말해주어야 한다. 즉, 설교자의 1차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다. 가르침과 설득이야말로 설교자가 이루어야 할 설교의 목적이었다. 설교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할 경우 설교단과 회중 사이에 간격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설교자는 설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발송자(sender)인 반면 회중은 설교자가 발송한 메시지를 받는 수신자(receiver)이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설교의 목적은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송하는 것이며 설교자의 임무는 설교 메시지를 가능한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청중이 그 메시지를 이해하거나 믿거나 느끼거나 또는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설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진리 또는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진리이다. 설교의 내용을 결정하는 설교자에게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오늘날의 상황에 적합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성경 본문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본문의 진리를 설교의 중심 사상으로 재구성하여 그 진리가 회중에게 분명하게 전달되거나 소통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전달해야 할 진리는 성경 본문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설교자는 그렇게 발견한 진리를 하나의 명제로 구성할 수 있다. ‘명제’란 참이나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문장이다. 보통 설교학에서 명제라는 것은 하나의 주어와 하나의 술어를 갖는 문장으로 “설교 전체의 주제를 정리한 진술문”이다. 설교자는 성경 연구를 통해 발견한 진리를 하나의 문장, 곧 명제로 만들어 그것을 중심으로 설교를 작성해 회중에게 전달한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설교언어는 명확성(clearness)과 명쾌함(perspicuity)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는 회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교 언어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교언어를 통해 뿜어져나오는 설교자의 에너지와 열정은 회중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직유나 은유와 같은 수사적인 표현들은 설교의 중심 사상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경우에만 유용한 것이었다. 그런 수사적 표현들은 언어가 가지는 정확성과 명료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전통적인 설교학의 특징을 보면 설교자와 대조적으로 회중의 역할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설교를 듣는 회중들은 설교자가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전달할 때, 단순히 그 진리를 전달받는 사람일 뿐이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면 포수가 그 공을 받듯이, 회중은 설교자의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내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1960년 말 그래디 데이비스(Grady Davis), 프래드 크래독(Fred B. Cradock), 데이비드 랜돌프(David Randolph) 등이 등장하면서 회중에 대한 관심이 설교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들 현대 설교학의 창시자들은 새로운 설교 환경에서 가장 적절한 설교는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고민 중 하나가 청중에 대한 관심이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설교자와 회중의 관계는 야구의 투수와 포수 같은 것이었다. 권위적이고 명령적인 관계, 곧 수직적인 관계였던 것이다. 당연히 설교에 있어서 회중들의 역할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설교학자들은 설교에 있어서 회중들이 갖는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설교자와 청중의 관계를 재해석해냈다. 말하는 자가 중요하지만 듣는 자도 중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설교학 지형에 새로운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설교자가 설교를 구성하고 설교문을 작성하는데 그 중심이 설교자에서 회중으로 넘어갔다. 설교자의 핵심 질문이 “설교자가 설교를 어떻게 구성해서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청중들이 설교자의 메시지를 어떻게 듣는가? 그들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제 설교자는 권위를 갖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권위가 없는 사람처럼 설교해야 했다. 프래드 크래독의 책 제목이 “As One without Authority”(『권위없는 자처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교자는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성경의 권위 아래 자신을 맡겨야 한다. 말씀의 권위 앞에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회중은 더 이상 단순히 설교자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아니라 설교자와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탐구의 여정(homiletical journey)에 함께하며, 설교를 통해 일어나는 하나님 사건(God’s event),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 일어나는 말씀 사건(Word’s event)에 동참하는 파트너인 것이다. 새로운 설교학 운동을 통해 설교에 있어서 회중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설교의 효과는 단순히 설교자만이 책임져야 하는 몫이 아니라 회중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