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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의 흐름(Ⅶ) > 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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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교수의 설교로의 초대

현대 설교의 흐름(Ⅶ)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페이지 정보

24-03-26 10:42

본문

 

설교의 형식은 성경 본문으로부터 나와야

설교자와 회중 사이의 간격 여전히 존재해

변화된 상황에 맞는 성경 언어의 해석 필요

 

조지훈 목사.jpg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5-5. 케리그마 설교학이 제시하는 설교의 형식

 

케리그마 설교학은 설교의 목적, 내용, 언어의 관점에서 전통적인 설교학의 한계를 많이 극복했다. 그러나 설교의 형식 측면에서 볼 때 두 설교학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설교 본문의 형식이 성경 본문의 형식으로부터 차용되어야 한다고 주장이다. 설교자는 설교의 형식을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성경 본문의 형태를 차용해야 한다. 설교를 ‘성경적’이라고 할 때는 단순히 성경의 내용뿐만 아니라 성경의 형식이 설교 형식에도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케리그마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바르트는 설교는 성경 본문과 분리된 작업이 아니며 본문과 설교는 하나의 전체(whole)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는 “주제(topic)가 아니라 성경 본문에 의해 인도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Barth, The Preaching the Gospel, 81).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이 설교의 전개 과정을 반드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다안 역시 비슷하게 주장한다. 주제 설교를 할지라도 그 주제가 성경에서 올 때라야 비로소 성경적인 설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James Danne, Preaching with Confidence [2001], 53). 

 

그렇다면 성경 본문이 설교의 형식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케리그마 설교학에서 설교 형식을 만드는 기준은 이것이다. “모든 설교는 오직 한 가지만을 말해야 하며, 그 한 가지는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James Danne, 58). 설교의 핵심이 되는 하나의 문장을 성경 본문으로부터 이끌어내고 그 문장이 설교 전체의 구조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루시 앳킨슨 로즈, 『하나님의 말씀과 대화 설교』, 103). 설교 형식과 관련해서 케리그마 설교학의 주장을 눈여겨 볼 부분은 “모든 설교가 성경 본문에 대한 설명(exposition)”이어야 하지만 “모든 설교가 모두 동일한 형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Danne, 57). 다시 말해 설교 형식이 어떤 것이 되었건 중요한 것은 그 형식을 컨트롤하는 것이 성경 본문이어야 하고, 그 성경 본문은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전통적인 설교학과 케리그마 설교학이 비슷한 점이다. 전통적인 설교학 역시 설교자가 성경에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하나의 중심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며, 그 문장을 설교의 중심 사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리그마 설교학과 전통적인 설교학은 “만일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한 가지 핵심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면, 회중도 그 메시지를 좀 더 정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루시 앳킨슨 로즈, 103-104). 

 

5-6. 케리그마 설교학의 한계

 

케리그마 설교학은 전통적인 설교학을 계승, 발전시켰다. 전통적인 설교학이 가진 한계들을 여러 면에서 극복했다. 그럼에도 케리그마 설교학 역시 몇 가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루시 앳킨슨 로즈는 케리그마 설교학이 가진 문제점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설교자와 회중 간의 간격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설교자와 회중은 야구의 투수와 포수 같은 역할을 한다. 투수인 설교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포수 역할의 회중은 수동적인 자세로 설교자의 메시지를 받는 것이다. 설교 준비 과정으로부터 설교의 전달에 이르기까지 설교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서 회중은 철저히 배제되어있다. 케리그마 설교학 역시 설교자와 회중의 관계를 그렇게 이해한다. 설교자는 “예배 참가자들에게 가장 본질적인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설교자는, 케리그마 설교학에서 이해하는 설교의 핵심 내용으로서의 케리그마나 복음에 대한 정확한 진술문이나 해설을 제시하는 권위적인 인물”일 뿐이다(로시 앳킨슨 로즈, 106). 

 

둘째, 모든 설교를 영적이 사건이 되어야 한다고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설교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만나주시는 사건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사건은 우리가 기대하는 열광적인 모습으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때라도 설교는 ‘희망을 가지고서 결국 마지막 문이 열릴 시간의 충만한 때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과 기대감’을 제공한다”(Gene F. Bartlett, The Audacity of Preaching, 98, 루시 앳킨슨 로즈, 108에서 재인용). 

 

셋째, 케리그마 설교학은 공동체보다는 개인 예배자에 무게를 둔다. 하나님과 개인의 인격적인 만남을 강조함으로써 공동체로서 교회의 위치가 모호해질 위험이 있다. 

 

넷째, 언어의 호환에 대한 것이다. 루시 앳킨슨 로즈는 “만일 언어가 사물이나 실체와의 관게에서 정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불완정하며 분명한 지시 대상과 분명한 의미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특정한 낱말이 특정한 사물을 대신하지 못한다면 결국 환언의 임무에 대해서 재고해야만 한다”라고 주장한다(루시 앳킨슨 로즈, 118). 환언(translating)이라 성경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회중들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다. 로즈는 칼 라너나 어니스트 베스트의 주장을 언급하면서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되거나 환언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성경에서 발견된 진리를 환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오늘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베스트의 주장을 지지한다. 즉, “언어의 난해함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아울러 성경 본문에서 변하지 않는 복음을 추출하고 환언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본문에 대한 올바른 해석으로서의 강조점의 변화는 결국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설교하고 어떻게 설교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청한다.”라는 것이다(루시 앳킨슨 로즈,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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