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설교의 흐름(Ⅵ)
조지훈 교수(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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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8 13:4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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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설교자의 말을 통해 일하신다
시대에 변화된 맞는 언어로 복음 전해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은유, 상징, 상상력 사용해야
설교자라면 누구나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길 소망한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과 연구, 철저한 원고 준비, 준비된 원고의 정확한 전달 등등 설교에는 다양한 활동들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설교 이론과 방법론이 계속해서 연구되고 개발되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교 이론을 소개하고 설교 방법론을 제시하는 글을 연재한다. 목회 일선에서 오늘도 설교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5-4. 케리그마 설교학이 제시하는 설교의 언어
루시 앳킨슨 로즈는 케리그마 설교학이 언어에 대해 두 가지 전제를 가진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 전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의 말을 통해 전달되며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인간의 설교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인 설교를 통해 말씀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신다. 이런 설교 이해는 전통적인 설교학의 특징과 대별된다. 전통적인 설교학이 설교자를 설교를 전달하는 전달자라고 생각되었던 반면 케리그마 설교학에서는 하나님이 직접적인 설교의 전달자가 된다. 이제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를 잘 전달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이 아니라 설교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설교를 통한 의사소통의 중심축이 인간에게서 하나님께로 넘어온 것이다. “진정한 설교자로서 하나님이 설교에서 선포된 말들을 설득력 있고 효과적인 것으로 만드신다”(Lucy Atkinson Rose, Sharing the Word: Preaching in the Roundtable Church, 43).
이런 설교 언어 이해는 케리그마 설교학자들이 생각한 설교의 목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들은 1세기의 언어와 개념의 옷을 입고 있는 성경을 오늘날 청중들에게 설교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1세기에 기록된 성경 내용이 오늘날 청중에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은 인간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의 자리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이다. 결국 설교 자리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설교자의 언어를 하나님의 언어가 되게 하심으로써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주인공이 되시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하나님이 하나님의 언어가 되게 하시고 그 언어를 듣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케리그마 설교학의 언어 이해는 언어와 그 언어가 가리키는 실체 사이의 이해에서도 전통적인 설교학과 차별성을 갖는다. 전통적인 설교학에서 “인간의 모든 말은 그 언어가 지시하는 실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본다”(로시 앳킨슨 로즈,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95). 예를 들어 예를 들어 설교자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면 그 설교자가 말한 ‘하나님’이 실제적인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리그마 설교학자들은 그와 같은 전통적인 설교학의 언어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말이 실체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교 언어와 하나님의 실체를 연결시켜 주기 때문에 결국 설교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로시 앳킨슨 로즈, 96). 이와 같은 케리그마 설교학의 언어 이해는 현대 설교학에서도 그대로 계승되는 중요한 전통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인간의 말을 통해 오늘도 말씀하시고, 사람들을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의 언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동적인 권능”인 것이다(루시 앳킨슨 로즈, 96).
케리그마 설교학에서 제시하는 언어에 대한 두 번째 이해는 언어와 그 언어가 지시하는 실체 사이에 분리가 일어날 수 있으며 실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상황 속에서 그 실체를 나타내는 언어는 계속해서 변할 수밖에 없고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리그마 설교학에서 설교자가 전해야 하는 설교의 내용은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케리그마이다. 케리그마는 인간의 경험이나 이해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실체이다. 케리그마는 설교로 전달되기 위해 간결하게 진술될 필요가 있으며 설교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전통적인 설교에서 설교되어야 할 진리와 설교자의 언어가 분리될 수 없다고 이해했던 것과는 달리 케리그마 설교학에서는 인간의 언어와 선포되는 케리그마는 서로 분리되어있다. 따라서 성경의 진리로서 케리그마는 변하지 않지만 그 케리그마를 드러내는 인간의 언어는 계속해서 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1세기의 언어로 기록된 케리그마를 있는 그대로 오늘날의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설교자는 1세기의 언어가 아니라 오늘날의 언어로 케리그마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동일한 케리그마를 오늘날의 회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선포해야 한다.”라는 것이다(루시 앳킨슨 로즈, 98). 이 과정에서도 케리그마 설교학의 대전제가 되는 하나님의 역할이 강조된다. 케리그마 설교학자들은 설교자가 케리그마를 오늘날의 언어로 재진술 할 때 그것을 효과적으로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케리그마 설교학자들 중에서 케리그마의 재진술 과정에서 설교자의 상상력을 강조하는 학자도 있다. 루시 앳킨슨 로즈는 그런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노만 피텐거를 언급한다. 피텐거는 케리그마를 청중들에게 소통시키면서 설교자가 느끼는 어려움은 인간의 ‘죄성’에 기인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그런 소통의 어려움을 유발하는 다른 원인은 “설교자가 말하는 언어 패턴이 회중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루시 앳킨슨 로즈, 99). 그러므로 피텐거는 설교가 선포되기 위해서는 “회중에게 적합한 이야기와 상징 그리고 시의 언어”로 되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자는 반드시 상상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리그마 역시 그 원래의 형태는 은유와 이야기였기 때문에 오늘날 다시 선포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환언되어야” 하고 “설교의 임무는 오래된 변하지 않은 복음을 위한 새로운 은유의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루시 앳킨슨 로즈, 99). 설교에 있어 상상력의 중요성은 현대 설교학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설교자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복음에 대해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와 상징과 은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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