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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군선교 현장 / “군 용사 한 영혼, 한 영혼을 자녀 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함께 일할 일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중앙상승교회 김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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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7 10:34

본문

김경수 목사(군선교).jpg

하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일들을 다 기록할 수는 없으나 작은 지면을 통하여 짧게나마 글을 쓰는 목적부터 말씀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주님의 자녀들 가운데 군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나아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군선교에 동참해 주십사하는 마음으로 부탁받고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군선교 현황을 짧게 소개하자면, 전국의 군교회는 군목사가 다 감당할 수가 없기에 550여 명의 민간 목사님들이 자비량으로 군교회를 맡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선교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퇴 연령이 있어 만 65세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군선교사 교육을 받은 후, 군교회를 맡기 위해 위촉받는 신규 위촉자 연령은 만 55세로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퇴자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 신규 위촉자는 극소수라서 군교회 맡을 자가 턱없이 부족하게 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관계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지혜 주셔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 제시되고 실현되어지기를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신자였던 저를 29세에 주님의 자녀 삼으시고, 선교사로 강권하여 부르셔서 30년간 준비시켰다가 마침내 군선교지로 보내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군선교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습니다. 불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대학교 때는 석가탄신일에 연등행사에 참석하면서 절에 다녔던 불신자였던 저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군선교지로 보내시기 위해 지금까지 어떻게 일하셨는가 나눌 텐데 바라기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부르심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여의도에 있는 예능원에 취업했는데 원장님이 여의도순복음교회 구역장이었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방과 후, 구역예배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듬해 9월 여의도순복음교회(바울성전) 철야예배 때 성령세례를 받고,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매일 철야, 여의도기도처 새벽예배까지 드리게 하시고, 성가대와 남선교회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1989년 에스겔 37장 1절~10절 말씀으로 세 번에 걸쳐 주의 종으로 부르셨고, 그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대회 때 선교사로 강권하셨습니다. 이후 군 선교지로 보내어 공식적인 선교사가 되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자비량 민간성직자 공식 명칭이 2019년도부터 ‘군선교사’로 변경됐습니다. 1990년 미술전공과 직장을 버리고 선교회 풀타임 간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2000년 청년대학부 사역자로 임명하셨는데 돌이켜보면 군선교를 위해 10여 년 청년사역자로 훈련시키셨습니다. 2000년도 하와이DTS 훈련을 마친 후, 이대 앞에 비전교회를 개척하고 2018년도까지 일곱 번 교회 확장과 이전하게 하시면서 리모델링에 관한 많은 경험과 거래처를 확보하게 하셨습니다. 2018년 25사단 파주, 적성에 있는 폐쇄된 군부대교회(중앙상승교회)에 리모델링하여 담임으로 취임했습니다. 당시 교회 리모델링 비용 5천 8백만원을 6개월만에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민간군선교.jpg

또한 용사들 한 명이라도 교회로 인도하시려고 기독교 편향이 아닌 상담가로서 부대 안에 들어가 사역할 수 있도록 일찍이 심리학을 전공하게 하시고 상담학 학위를 받게 하셨습니다. 

 

군교회 청년들이 살아야 한국교회가 살아납니다.

부대 상황과 군교회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교회에 나온 용사들에게 물어보면, 사회에서 교회를 꾸준히 다녔던 친구와 가끔 혹은 한 두 번 나갔다고 말하는 용사들이 열명 중 서너명입니다. 나머지 7명은 교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답합니다. 그들이 사회에 있었다면 스스로 교회를 갔을까요? 사회에서 교회를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답한 용사들이 매주 교회 나오는 예배 인원 가운데 60퍼센트가 넘는데,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군입대하여 교회에 나와 예배 현장을 경험하며 복음을 듣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일입니까? 분단된 대한민국 상황은 매우 안타깝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군대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군교회는 영외에 있어 인솔자가 예배 인원을 인솔해서 옵니다. 교회 나오는 시간이 대략 정해져 있다보니 그 시간이 되면 나와 남편은 기린 목을 하고 용사들이 오는 길목을 한 없이 바라보다가 저 멀리 용사들의 모습이 보이면 두 손을 번쩍 들고 격하게 환영인사를 하고 얼굴인식이 될 거리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바라보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초면의 용사는 처음 교회에 나오니 예쁘고, 가끔 나오는 용사는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매주 나오는 용사는 착실하게 매주 교회 나오니 더 예쁘고 사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는 사회에 있는 카페 못지않게 잘 꾸민 군교회 카페로 이동해서 간식을 나눕니다. 초코파이는 이조시대 이야기이고, 우리 교회는 햄버거 아니면 짜장면입니다. 용사들 월급도 많고 웬만한 음식은 PX에 냉동식품으로 들어오기에 PX에 없는 퀄러티 있는 간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핸드폰이 주어지기 전에는 용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간식 먹으면서도 한 손엔 햄버거, 한 손엔 핸드폰을 들고 각각 자기가 보고 싶은 유튜브를 보고 있기에 그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부대 복귀 시간이 되어 두 줄 종대로 열을 맞출 때부터 서운해지기 시작합니다. 한 주간 건강하게 잘 지내고 다음 주일에 보자며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걸어가는 용사들의 뒷모습을 남편과 나는 한참 동안 배웅합니다.

 

전역자 사역

 

군대에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교회에 꾸준히 나오는 용사들이 많지만 전역 후에 사회에 있는 교회에 정착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나오는 용사들은 전역 후에 나를 만나러 여의도로 온다는 것입니다. 전역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용사들이 많고, 전역한 용사들도 계속 찾아오고 있습니다. 군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지만 신앙이나 진로문제, 그 외 고민을 털어놓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네 다섯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전역자들을 위하여 체계적인 사역을 준비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과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청년군선교회 YMMC(Youth Military Missionary Community)

 

‘청년군선교회’는 김포에 있는 군교회 군종 출신들이 발족했습니다. 이들은 전역 후에도 군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하며 용사들의 믿음을 세워주고 섬기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른이 넘은 군선배이자 사회선배인 이들은 매월 셋째 주일에 우리 중앙상승교회에 달려와  함께 예배드리며 용사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며 힘쓰는 가운데 중앙상승교회에서 예배드렸던 전역자들 가운데에서 같은 마음으로 합류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며 서울에서도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핸드폰 소지한 병영문화와 코로나 이후 어려워진 군선교,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

 

어떻게든 한 영혼이라도 군교회에 나와 복음을 듣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군교회 위문하러 오시는 분들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먼길을 마다 않고 방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병영문화는 인권 문제로 간부나 상급자가 교회 가자고 말을 전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핸드폰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 및 콘텐츠들을 충분히 접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위문 공연이 아니고서는 용사들을 교회로 이끌어 오거나 호응을 얻어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핸드폰시대 MZ세대에 맞는 선교 방향도 재구성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선교지에는 물질이 따라가는데 군선교 현장에도 간식 단가가 높아지면서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은 간식 외에도 다양한 명목으로 기프티콘을 제공해야 하기에 여전히 선교에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군용사들 안전과 영혼구원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들이 절실합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에서 복음 전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은 여전히 군부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2000년 이대 앞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캠퍼스 복음화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이화여대 같은 경우는 이단들의 극성적인 전도로 말미암아 학생들에게 불쾌감을 주어 학업에 방해가 된다며, 학생들 보호 차원에서 용역회사 인력을 동원시켜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까지도 정문 밖으로 끌려 나오곤 했습니다.

 

요즘, 복음 전하겠다고 다가가 단 5분이라도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고 물으면 흔쾌히 좋다고 할 수 있는 청년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도 군교회는 사회에서 교회를 한 번도 나간 경험이 없는 용사들이 교회에 나와 귀를 열고 복음을 듣고자 예배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그들이 믿음을 갖고 전역하여 사회교회에 정착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 있지만, 군교회에서 들었던 각자의 심령에 심겨진 생명의 말씀과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그들의 인생 여정 가운데 언젠가는 그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향하게 하는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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