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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순복음신앙과 젓가락의 메타포 > 배현성 교수의 오순절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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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순복음신앙과 젓가락의 메타포 > 배현성 교수의 오순절 신학




(3)순복음신앙과 젓가락의 메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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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주희 작성일23-09-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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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심은 순복음신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뜻하신 계획과 섭리를 성취하시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젓가락의 메타포가 제기하는 신학적 의미들을 잘 이해하여 순복음신앙이 보다 많은 영적 유익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순복음신앙은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늘 성령께 묻고 답을 찾는 데 관심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지금’(now), ‘여기서’(here)라는 시간과 공간에 신앙이 엮어져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순복음신앙은 변화무쌍한 시대적 상황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로 승부한다. 그러기에 순복음신앙에 대해 섣부르게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그 함축적인 의미들을 살펴보아 그 잠재력을 더욱 실제화하려는 자세가 요청된다. 순복음신앙을 시재(tense)로 말한다면 ‘과거 완료형’이기보다는 지금도 만들어져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에 대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 ‘새 것’(고후5:17)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새로운 변화에 열려져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순복음신앙이 지닌 독특성을 적절하게 설명해 낼 수 있는 도구로서 ‘메타포’(metaphor)의 개념이 필요하다. 여기서 메타포란 잘 모르거나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보다 잘 알려져 있거나 친숙한 개념들에 빗대어 그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실 때 사용하셨던 ‘비유’도 바로 메타포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로 한국인들의 음식 문화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젓가락’(chopsticks)을 메타포로 소개하고 싶다. 따라서 본 기고에서는 젓가락의 메타포를 통해 순복음신앙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 잠재력을 더욱 활성화 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1. 무엇보다도 젓가락은 한국인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반영한다. 젓가락은 음식을 먹는 데 중요한 도구다. 우리의 신앙과 신학은 그저 종교적인 차원의 의식을 주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성경은 하나 같이 우리 인생들이 살아가는 실제적인 삶의 문제들을 결코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삶의 자리’는 곧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복음신앙은 삶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하지만 순복음신앙은 ‘삶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보다 궁극적인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2. 젓가락은 조화(harmony)를 염원하는 한국인의 지혜와 깊은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조화란 모순 대립적인 각각의 개체가 하나로 화합하여 균형을 이루는 통전적 가치 개념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젓가락의 한쪽은 지렛대 역할을 다른 한쪽은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정지(靜)와 움직임(動)의 조화를 통해 젓가락은 비로소 음식물을 취할 수 있는 도구로써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젓가락에는 서로 다른 두 기능들이 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통합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젓가락에 담긴 조화의 개념은 순복음신앙이 왜 그토록 ‘전인구원’을 강조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전인구원은 사람의 영혼이 잘되는 것은 물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영, 혼, 육의 균형 잡힌 상태(요삼1:2)로서 ‘하나님 형상’의 궁극적 회복을 뜻하는 것이다. 


3. 젓가락은 한국인의 공동체적인 관계성을 상징한다. 젓가락은 두 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로는 젓가락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한자로 인간을 사람 인(人)으로 표기한다. 상형문자인 한자를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본다면 사람 인(人)은 두 막대기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받쳐주고 하나는 걸쳐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은 서로를 지탱하게 해주고 의지할 수도 있는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적 존재이다. 순복음신앙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적 관계성을 중시한다. 함께 모여 관계성을 형성 할 때 순복음신앙이 지닌 진면목을 깨달을 수 있다. 교회의 탄생은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들이 함께 연합하고 모여 기도할 때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동체 일원들과 함께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적 하나됨을 실현했던 아름다운 전례를 갖고 있다. 순복음신앙은 바로 그와 같은 본질적 의미들을 강조한다.  


4. 젓가락은 그것을 사용해 본 사람이 다시 찾는다는 점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역으로 말하면 젓가락을 사용해 본 경험이 없는 자들에게 그것은 다만 불편한 막대기에 불과하다. 젓가락은 반복적 사용을 통해 익숙해질 때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매일같이 사용하면서 훈련하지 않으면 젓가락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순복음신앙은 영적 훈련을 통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데 의의를 둔다. 말씀과 기도, 예배와 찬양 그리고 전도와 봉사, 성도 간의 교제가 어우러진 성숙한 교회는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 방언은 초대교회가 오늘날 현대교회에 이르기까지 전수해 주었던 영적 유산이다. 오늘날 방언 무용론자들의 다수는 방언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놀라운 은혜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들의 한계는 방언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점으로 귀결되는 데 있다. 방언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질서 있게 활용하여 지켜내야 할 영적 유산이다. 순복음신앙은 성령의 은사를 개발하고 활용하여 복음 증거 사역으로 연결시키는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젓가락을 사용해 본 자들이 젓가락의 필요성을 느끼듯이 성령의 은사를 경험한 자들이 그 은사를 귀하게 여기고 더 큰 은사를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5. 젓가락은 우리의 문화라는 면에서 독특하다. 젓가락은 우리만이 아닌 중국과 일본 등 동북 아시아권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젓가락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문화로 정착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순복음신앙은 오순절신앙이 한국적 신앙으로 토착화된 우리의 신앙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순복음신앙을 논할 때 오순절적 특성은 물론 우리의 고유의 신앙적 특성이 자리매김된 우리의 신앙이라는 신학적 정서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6. 마지막으로, 젓가락은 두 짝이 서로 교차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사실 신앙의 여정에는 갈등과 긴장이 상존하는 영역이 있다. 초대 교회는 엄청난 박해 속에서 아름다운 영적 꽃을 피웠다. 순복음신앙은 갈등과 긴장을 신앙성숙의 중요한 요인으로 본다. 그런 과정 없이 영적 성장과 발전을 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은 파괴적이기보다는 건설적이며 창조적이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긴장을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순복음신앙은 이러한 긴장과 갈등을 무시하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이야말로 교회를 정화하고 발전적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순복음신앙은 모순 대립적으로 보이는 갈등 구조를 새로운 변혁을 향한 돌파구로 이해하려는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을 강조한다. 순복음신앙이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절대 부정’을 ‘절대 긍정’으로 라는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선이 악으로, 악이 선으로 둔갑하는 것들을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라는 말씀을 대변해 주었다. 순복음신앙이 다만 외적인 평가에만 지나친 관심을 둔다면 아무리 좋은 신학적 유산과 배경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가 탈색될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은 순복음신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메타포가 제기하는 신학적 의미들을 잘 이해하여 순복음신앙이 보다 많은 영적 유익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끝>


그동안 연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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