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_maket_banner.png
순복음홍성교회 라동옥 목사가 직접 농사지은 벌꿀판매
이태근 목사와 함께하는 아침묵상
본교단 업무협약 업체 / 기하성회원 특별우대
홍영건장로
하나로의료재단
종교인과세

(2)순복음신앙과 오순절 운동 > 배현성 교수의 오순절 신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배현성 교수의 오순절 신학

(2)순복음신앙과 오순절 운동

배현성 교수(한세대 신학부 조직신학)

페이지 정보

23-08-25 12:58

본문


순복음신앙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현장으로 돌아가 교만과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성령을 의지하자는 오순절 운동과 역사적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오순절 운동’이 지닌 놀라운 능력과 잠재력을 이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해 내는 것이야말로 순복음신앙이 지닌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순복음신앙이 오순절 운동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아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성을 가늠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주>


기독교 사상사를 살펴보면 어느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하여 기존의 사상과 가치체계의 일대 전환이 있음을 보게 된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교회가 비본질적인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때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를 강조하면서 교회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그것은 일대 신학적 사고의 전환(paradigm shift)으로서 잠들어 있던 중세시대를 깨웠다. 이후 계몽주의 이래로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신학이 몰려왔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한 계시적 신학에 복귀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적 지각 변동은 앞으로도 교회에 계속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20세기 초 미국을 중심으로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두며 나타난 ‘오순절 운동’은 ‘기독교의 제3의 세력’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하비 콕스(Harvey Cox)는 그 운동을 가리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가고 있는 기독교 운동’이라고도 언급했다. 오순절 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의 수는 남미를 중심으로 여전히 늘어나면서 가히 “오순절주의의 세계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독일의 몰트만(J. Moltmann) 교수는 오순절 운동의 약진과 관련해서 새 천년(new millennium)이야말로 ‘성령의 천년’이 될 것을 말하면서 성령이 ‘오순절 운동’을 이끄시는 분이심을 시사하기도 했다. 


초대교회는 당시의 유대적 전통 속에서는 이단으로 간주되었기에 많은 핍박과 시련 속에서 오순절 운동이 지녔던 본질을 지켜내야 했다. 초대교회가 좌절하지 않고 강인한 신앙을 형성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소개된 ‘하나님 나라 운동’(God’s Kingdom Movement)과 예수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소개한 ‘예수 운동’(Jesus Movement) 그리고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된 ‘성령 운동’(Holy Spirit Movement)을 들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오순절 운동’을 실제적으로 있게 했던 원형적인 요인들(archetypal factors)이다. 이 운동들은 순복음신앙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체계들을 다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는 열악한 주변의 환경적 요인들을 극복하고 기독교라는 틀을 갖출 수 있었다. 그것이 사도행전에 나타났던 오순절 성령 강림의 때를 기점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언어,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복음을 확산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순복음신앙은 이러한 오순절 운동에 그 신학적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순복음신앙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현장으로 돌아가 교만과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성령을 의지하는 오순절 운동과 역사적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이 ‘오순절 운동’이 지닌 놀라운 능력과 잠재력을 이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해 내는 것이야말로 순복음신앙이 지닌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회가 조직화, 교리화, 제도화, 현대화의 과정을 밟아 오면서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린 여러 측면들을 간과할 수 없다. 서구 유럽의 유서 깊은 교회들이 관광지가 되어버려 세상에 밟혀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있지 않는가? 한국 교회도 안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오순절 운동’을 단순히 개 교단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교회의 탄생은 오순절날 성령 강림사건(행2:1-4)과 직결이 되어 있으며 교회의 확산 역시 성령의 역동성을 강조해 왔던 ‘오순절 운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오순절’이 순복음 교회는 물론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모두의 영적 고향이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교회 전체가 ‘오순절 운동’이 지닌 성령의 역동성을 함께 공유하여 세속화를 극복하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어야겠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초대교회 사도들만의 전유물로 인식하여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경계해야 한다.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한 위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그 누구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제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사의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우셔서 잠자는 교회들을 깨우시고 새롭게 하셨다. 요엘 선지자는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욜 2:28)라고 선포함으로써 늦은 비 성령의 역사가 온 세계를 뒤덮어 마지막 주님 재림의 때를 준비할 것을 예언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순절 운동은 우리로 영적인 눈을 뜨게 하고 우리의 관심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게 한다. 단순히 교회로 하여금 신비한 체험과 기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증거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늘 성령께 묻고 순종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과 성령의 ‘무한성’이라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과연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필자는 그런 의미에서 오순절 운동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내맡겨졌다는 의미에서 상태(state)를 넘어 운동(movement)으로, 이론(theory)을 넘어 진리(truth)로, 기술(technique)을 넘어 영성(spirituality)으로 다가올 미래를 열어나가야 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순복음신앙이 오순절 운동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순복음신앙은 ‘오순절 운동’이 지닌 다양하고도 변혁적인 특성들을 마음껏 활용하여 이 시대 영적 각성을 유도할 수 있어야겠다. 성령께서는 개인이나 공동체로 하여금 날마다 새로운 지평을 향해 도전하며 나갈 수 있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invisible world)를 ‘눈에 보이는 세계’(visible world)로 전환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형식적이며, 사변적인 것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 주시기도 한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초월하시는 성령을 삶의 한가운데서 실제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오순절 운동은 지금까지 교회사에 있었던 어느 운동들이나 개혁들과도 구분된다. 순복음신앙이 역동적인 이유도 오순절 운동이 지니고 있는 특성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순복음신앙은 오순절 운동 안에 내재된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교회를 변화와 갱신 그리고 부흥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gnews.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